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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지미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제41집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533 - 56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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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만희 영화에 나타난 ‘민족’의 표상이 박정희 정권이 국가의 주체로서 호명했던 ‘민족’과 충돌하고 합일되는 지점들을 살펴보았다. 군사 쿠테타를 통해 통치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산업 발전을 통한 ‘국민 국가’ 건설과,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조국근대화’를 위해 정신적 기반으로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한국 역사 안에서 ‘민족’ 개념은 허구적인 동시에 실체적으로 작동해왔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인종’이나 ‘종족’과 같은 실체와 직접적으로 결합되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던 이만희는 1960년대 ‘반공 영화’ 흥행작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물질적, 제도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65년 작품인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동일 ‘민족’의 범주 안에서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이만희는 검찰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영화는 상영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국가가 영화의 상영을 위한 검열 뿐 아니라 제작 허가 및 영화 제작사의 설립 허가에까지 관여했던 1960~70년대에 이 사건은 이만희를 비롯해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만들어진 이만희의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졌던 국군과 이 작품에서 국군 묘사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박정희 정권과 이만희의 민족 표상이 늘 상충되는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군에 대한 형상화를 최소화하거나 삭제하고 ‘적(敵)’으로서 중공이나 소련을 두드러지게 묘사했거나 이데올로기 대립의 문제를 한 가족 내부의 특수한 비극으로 축소해서 묘사한 이만희의 다른 영화들은 정권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인 시공간으로부터 이탈하여 ‘느와르’나 ‘웨스턴’의 장르규범들에 충실한 이만희의 영화들은 당대의 정치 권력에 의해 강제된 ‘민족’ 개념으로부터 탈주하는 민족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만희 영화에서 나타난 다양한 민족 스펙트럼과 당대의 지배 권력이 강요했던 ‘민족’개념의 경계를 실체적으로 가시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민족’ 담론과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2. 개인의 ‘민족’과 국가의 ‘민족’이 충돌할 때: <7인의 여포로>와 <돌아온 여군>
3. 전쟁 영화를 통해 그려지는 ‘민족’의 실체
4. ‘역사’와 ‘민족’을 초월하는 장르적 상상력
5.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초록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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