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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곤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3호
발행연도
2013.11
수록면
7 - 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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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안압지’는 ‘臨海殿址’라는 명칭으로 사적 1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쳐 현재 ‘경주 동궁과 월지’로 개칭되었다. 이의 근거는 각종 고고자료와 문헌자료를 연계하여 동궁과 월지궁을 동일시하고, 안압지는 동궁 부속 원지이며 당대 명칭을 월지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자궁의 대표적 이칭인 東宮은 때로 春宮 또는 靑宮으로 표기된 바 있지만 ‘月’과 연계되어 명명한 경우는 없었다. 각종 사료를 보면 신라 멸망기까지 동궁 표기가 주를 이루었고 때로 춘궁이 사용되었다. 오히려 월지궁은 동궁과 구별되는 건물로 월성 방어 시설인 해자가 통일이후 조경 기능을 가진 인공 연못으로 개조되며 월지라 명명되었고 이러한 월지 북단 인근에 건립된 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사실 동양의 여러 국가에서 조영된 왕실 연못(소위 태액지)은 바다를 상징하므로 고유 명칭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北海 中海 南海 福海 등으로 명명되었다. 동시기의 백제 무왕이 ‘궁 남쪽에 건립한 연못’도 오늘날 ‘궁남지’라 통칭하지만 이는 당시 명칭이 아니며, 인접 조영된 전각을 망해루(또는 망해정)라고 명명한 것에서 바다를 상징해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라 안압지도 서측에 건립된 전각이 임해전으로 안압지가 海의 개념에 기반한 태액지임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더 나아가 안압지 발굴 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한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볼 수 없어 좁은 공간에서도 넓은 바다를 연상하도록 조영되었다. 그러므로 신라시대 안압지는 ‘海’를 상징하였으므로 결코 ‘월지’로 명명될 수 없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안압지와 임해전 그리고 동궁
3. 태자 거소 동궁과 부군 수종 거소 월지궁
4. 바다를 상징한 안압지와 연못 명칭인 월지
5. 맺음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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