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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변주승 (전주대학교) 문경득 (전주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9집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359 - 39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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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란(戊申亂)은 영조 4년(1728)에 경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서 영조의 왕위계승 정통성을 부정하며 일어난 반란이다. 본 논문은 무신란에 대한 조사와 처결이 기록된 ?무신역옥추안(戊申逆獄推案)?을 주로 활용하여,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난 무신란을 크게 반란군의 부안 평교 집결과 박필현의 태인 거병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반란군의 부안 평교 집결은 정세윤과 원만주가 포섭한 부안 인근 지역의 반란군이 3월 15일에 평교에 집결한 사건이다. 원래 이들은 3월 19일에 평교에 집결해 청주로 이동해 반란군과 합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인좌의 급한 연락을 받은 정세윤과 원만주가 먼저 청주로 이동한 뒤, 15일에 부안 평교에서 집결했다. 그러나 주동자의 부재와 악천후, 적은 규모 등으로 인해 해산했고, 일부만 청주로 이동해 반란에 가담했다. 집결의 주모자인 정세윤은 변산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인데, 기존의 연구에서 변산적은 흔히 ‘변산의 도적 무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정세윤의 행적과 실제로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분석해본 결과, 변산적은 ‘변산의 역적 무리’였다.
박필현의 태인 거병은 당시 태인 현감이던 박필현이 관군을 이끌고 태인을 출발하여, 3월 22일 새벽 전주성 서쪽 삼천까지 진출하여 전주성을 공략하려 했던 사건이다. 박필현은 반란군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태인의 군사를 이끌고 전주성의 군사와 합류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여 전주성을 장악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태인 현감에서 파직되고, 부안과 나주의 반란군이 계획대로 오지 않자, 박필현은 태인의 관군만을 거느리고 전주성으로 향했다. 그는 전라감사 정사효에게 편지를 보내 포섭을 시도했으나, 전주영장 이경지가 편지를 받아들이지 않아 실패했다. 이에 바로 청주로 이동할 뜻을 밝히자, 박필현의 목적이 반란군 토벌이 아니라 반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태인의 관군들이 도망쳐, 박필현의 태인 거병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본 논문의 연구 의의가 있다. 첫째, ?무신역옥추안?에 나오는 관련자의 진술을 비교?검증하여, 전라도 지역 무신란의 전개과정을 파악했다. 둘째, 무신란의 전개과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기존 연구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한 ‘정세윤’을 분석했다. 셋째, 무신란 당시의 ‘변산적’이 하층민으로 구성된 변산의 도적 무리라는 기존 견해와 달리, ‘변산의 역적 무리’임을 밝혔다.

목차

1. 서론
2. 반란군의 부안 평교 집결
3. 박필현의 태인 거병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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