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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식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무속학회 한국무속학 한국무속학 제27집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151 - 17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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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무가 〈성주풀이〉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방송과 음반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잡가화 민요화 하는 과정에 함축된 음악인들의 음악관에 대한 담론을 살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음악은 맥락변환하는 과정에서 음악을 둘러싼 담론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음악의 담론은 그 음악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상호소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담론은 그 노래를 둘러싼 문화맥락을 반영하는 ‘창(窓)’인 동시에 문화맥락을 재창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이글은 노래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담론을 통해 노래를 둘러싼 문화맥락의 변화와 이에 반응하는 노래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음악적 담론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성주풀이〉는 구한말부터 남도라는 한정된 지역의 무가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중앙무대에서까지 공연되는 남도잡가 남도민요로 탈맥락화한 노래이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무가인 〈노래가락〉과 〈창부타령〉, 서도 무가인 〈수심가〉 등이 대중매체의 힘으로 급속하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새로운 노래갈래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 노래는 ‘잡가’에 편입되어 1920~30년대의 새로운 대중음악으로 각광받았다. 그리고 서울과 서도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잡가’가 현재까지도 ‘민요’보다는 예술적인 음악으로 인식된다.
남도 음악인들이 남도 무가 중에서 대중화를 겨냥해서 선택한 노래가 〈성주풀이〉이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주소비층이었던 중앙의 음악애호가들에게 음악어법이 다른 〈성주풀이〉는 그리 매력적인 노래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주풀이〉는 무가가 잡가화되는 과정에서 서울 무가처럼 활발하게 대중매체에 소개되지 않았다. 〈성주풀이〉를 비롯한 남도잡가는 1940년대 이후에는 ‘남도민요’로 고착화된다. 이는 1930년대 이후 진보적 좌파지식인에 의해 민요가 민족의 노래로 자리매김하면서 각종 신민요 등으로 만들면서 ‘대중화’ ‘현대화’ 하는 과정에서 민요의 범위가 확장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도 음악인들은 일부 진보적 음악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로운 음악문화 개척 작업에 동참하지 않고 전통음악인 판소리와 창극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다. 그리고 잡가와 민요를 판소리에 비해 하위예술로 인식하는 남도 음악인들은 〈성주풀이〉를 잡가 또는 민요로 분류한다. 현재 서울과 서도 음악인들이 잡가를 민요보다 예술적 음악으로 인식하는데 비하여 남도 음악인들은 잡가와 민요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것은 이 음악인 판소리보다 하위음악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성주풀이〉의 잡가화 과정에서의 담론
Ⅲ.〈성주풀이〉의 민요화 과정에서의 담론
Ⅳ. 맺는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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