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동규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68輯
발행연도
2013.10
수록면
333 - 367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여러 가지 용어로 불리게 된다. 1968년 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사건’, ‘운동’, ‘혁명’, ‘저항’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1968년 봄 프랑스를 8주간 뒤흔든 사건을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은 다시 시간과 공간을 한정하는 표현들과 결합한다. ‘68’, ‘5월’, ‘5월~6월’과 같은 표현은 시간적 범위를 정의하는가 하면 ‘프랑스’, ‘파리’, 또는 다른 지방 도시들과의 조합은 이 사건의 지리적 영역을 규정한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들의 홍수 속에서 본 연구는 ‘1968년 5월’이라는 가장 일반화된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다. 즉 본 연구는 이 표현이 1968년의 저항을 학생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는 5월에 한정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을 학생운동의 상징적 무대였던 파리로 집중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표현에서 배제되는 6월까지 계속된 노동자 총파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본 연구는 5월과 6월의 분기점이었던 그르넬 협상에 임하는 노동총연맹의 전략에 대한 분석을 통해 1968년 5월을 넘어 6월까지 파업이 계속되는 과정을 살펴 볼 것이다. 이 협상의 결과는 ‘그르넬 협정(Accords de Granelle)’ ‘그르넬 초안(protocole de Grenelle)’ 또는 ‘그르넬 (협정)확인서(Constat de Grenelle)’ 등으로 불린다. 이 협상의 결과에 서명을 하지 않은 노동총연맹은 확인서라는 단어를 선호하는데 반해, 노동조합과의 협상을 통해 사회의 안정화를 꾀하려고 했던 정부는 협정이라는 표현을 통해 분쟁국면이 해소되었다는 사실을 선전했다. 왜 노동총연맹은 정부가 협정이라고 부르는 이 협상 결과에 서명을 하지 않았는가? 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35% 인상과 평균 10%에 달하는 임금 인상, 그리고 각종 노동조합의 권리 강화를 약속하는 협상결과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계속했는가? 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공산당과 노동총연맹이 주도적으로 만든 사회보장제도에 수정을 가하는 법률인 쟌네의 법의 철폐문제가 그르넬 협상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고찰하면서 노동총연맹이 그르넬 협상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이용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사회보장 제도 운영의 변화, 좌파연합 집회에서 공산당과 노동총연맹의 배제, 그리고 파업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노동총연맹의 전략 등 각기 독립적인 상황들이 하나의 위기-협상결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와 총파업 연장-로 모아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 요소들이 각각 어떻게 총파업의 확산과 장기화의 전환점이 되는 그르넬 협상을 ‘사건화’하는지 분석하도록 하겠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기억에서 역사로 : 그르넬 협상의 ‘사건성’ 이해하기와 그 의의
Ⅲ. 5월의 위기에서 그르넬 협상으로 : 국면의 전환과 노동총연맹의 전략
Ⅳ. 노동총연맹의 ‘그르넬 협상’ 인식과 전략
Ⅴ. 그르넬 협상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전략 : 노동총연맹과 사회보장제도
Ⅵ. 맺음말
Abstract
참고자료 및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910-002678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