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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진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9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193 - 22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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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전하는 조선시대 공신교서 중에서 후대에 改造된 3건의 장황형식을 관련 의궤의 기록내용에 바탕하여 분석한 것이다. 현존하는 공신교서 중에서 改造된 것으로 확인된 예는 〈朴東亮扈聖功臣敎書〉, 〈具宏靖社功臣敎書〉, 〈朴炡靖社功臣敎書〉 3건이다.
이번에 조사한 공신교서 3건은 왕명문서의 재발급본이라는 측면에서 그 희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1680년에서 1681년 保社功臣敎書 발급 당시 함께 改造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보사공신교서는 현재까지 제작 당시 장황을 그대로 갖춘 예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이 3건의 공신교서 장황을 통해 보사공신교서의 장황을 고증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때문이다.
이 3건의 改造本과 관련해서 『保社錄勳都監儀軌』의 기록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당시 개조되어 재발급된 공신교서는 현전하는 3건보다 더 많았는데, 扈聖功臣 李恒福(1등)·朴東亮(2등), 靖社功臣 金?·李貴·申景?·李曙·崔嗚吉·具宏(1등)·申景?·李時白·李時昉·張維·李懈(2등)·朴炡(3등), 昭武功臣李擢男(2등) 15건의 공신교서가 이에 해당한다. 이 교서들이 개조된 이유는 15건 모두 丙子胡亂으로 인해 原本이 소실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15건 외에도 호성공신 2등에 책봉된 윤두수(1533~1601)의 호성공신교서 역시 원본을 소실하여 1728년 분무공신교서 발급 시 개조되었다는 것이 『承政院日記』와 『奮武錄勳都監儀軌』의 기록에서 확인되었으나, 교서의 존재는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개조된 공신교서의 소실원인과 개조사유에 대해서는 현전하는 3건의 공신교서 본문 말미에도 기록하고 있다. 각 교서의 개조시기는 〈구굉정사공신교서〉가 1680년(숙종 6), 〈박정정사공신교서〉는 1681년(숙종 7)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박동량호성공신교서〉의 경우, 교서 말미의 기록만으로는 정확한 개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보사녹훈도감의궤』 기록을 통해 1681년 〈박정정사공신교서〉와 함께 개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신교서의 제작과 粧?은 錄勳都監에서 주관한다. 1680년에 개조된 〈구굉정사공신교서〉 역시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1681년에 개조된 〈박동량호성공신교서〉와 〈박정정사공신교서〉의 경우에는 후손들이 私家에서 교서를 제작하여 장황한 후, 녹훈도감에 安寶를 요청하여 追給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제작 양상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들의 장황이 소실되기 이전의 형태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소실되기 이전 원형의 장황형태를 지니고 있는 자료와 이 자료들에 대한 문헌기록을 내용을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았으며, 敎書 장황 각 부분을 지칭하는 용어, 사용된 재료, 粧?附材의 형태와 크기에서 제작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上下繪粧의 폭은 1625년 < 1604년 < 改造本의 순으로 넓어지는데, 개조본의 하회장은 상회장과 그 폭이 거의 1 : 1의 비율로 후대로 갈수록 상회장의 폭이 넓어지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변아의 폭은 후대로 갈수록 넓게 변하고, 끈(多繪纓子)의 폭 역시 원본의 호성공신교서와 정사공신교서는 좁은 반면 개조본은 이보다 넓다.
上下橫木과 莫只의 재료로는 산유자목을 사용하였고, 다회영자는 오방색을 의미하는 다섯가지 색실을 엮어 織造하였고, 籤(箴)의 재료는 鹿角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흥미롭다. 교서의 배접은 총 2차례에 걸쳐 진행하여 전체적으로 두 겹으로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이는데, 바탕견의 배접은 毛邊紙로 하였고, 두 번째의 전체적인 배접에는 楮注紙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2겹의 배접상태는 자료를 실견하여 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들 장황재료에 대한 정보는 전적문화재의 재질 분석, 보존·복원 분야에 기초적인 자료로서 중요하므로 검토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扈聖功臣敎書와 靖社功臣敎書의 粧?
Ⅲ. 改造本 扈聖功臣敎書와 靖社功臣敎書의 粧?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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