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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9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172 - 191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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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김광훈·신선욱 등이 조선 고종의 지시를 받아 연해주 일대를 정탐하여 제작한 〈俄國輿地圖〉(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는 조선시대 관방지도로서 2008년 보물1597호로 지정됐다. 〈아국여지도〉가 보물로서 지니는 가치는 지도가 제작된 19세기 말 조선의 대내외 상황과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기초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국여지도〉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지도의 제작과 완성 시기에 관한 것이다. 19세기 말의 한러관계에서 최초의 획기는 1884년의 조러수교였고, 이 글에서 논한 〈아국여지도〉는 바로 그 직전에 작성이 거의 마쳐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후에 약간 첨삭된 부분도 예상되나, 기본 틀은 이 시기에 마무리 된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요컨대 지도의 제작 완료는 조러수교 직전이라는 뜻이다. 서문에 등장하는 ‘16년 이래’의 의미 해석은 탐사의 시작과 지도 완성의 시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구로 생각된다. 이를 통해 지도제작 착수 시기는 적어도 고종 즉위 16년째인 1879년으로 추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이 지도의 제작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못한 점은 많지만, 이 지도의 보물적 가치는 충분하다. 두만강 유역, 연해주 지역, 청국의 국경지대 등을 포괄하여 이렇게 정확하게 조사하고 정밀하게 그려낸 조선 측의 지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과거에 두만강 하류에 있었고, 지금은 러시아 영토로 들어가 있는 鹿屯島가 당시 조선인들이 살고 있는 조선의 땅이었음도 이 지도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항 이래 군사·재정·외교 등 각 분야의 부담이 가중되던 시점에서 물자와 시간, 인력을 투입하여 이 정도로 상세히 제작된 것 자체가 놀랍다.
다만 이 지도의 귀중함을 생각하면서 더 고려되는 것은 과학적 축적과 지도제작법을 동원하여 러시아와 일본 등은 얼마나 많은 한반도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지도제작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 점은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는 이런 지도 자료가 드물지만, 서양 각국은 풍부하다. 일례로 명성황후 시해, 아관파천, 경운궁 대화재 당시의 현장도면은 물론, 정동 주변과 서울의 주요 도로, 건축물, 주요 경관 등에 관한 도면과 그림들도 대부분은 우리를 관찰하던 타자의 기록과 자료에서 나온 것들이다. 물론 그런 ‘상대적 열세’를 감안할 때, 이 지도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점이 있음은 물론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19세기 말의 한러관계와 러시아의 한반도 정탐
Ⅲ. 〈俄國與地圖〉 제작에 관한 몇 가지 문제
Ⅳ. 조선의 노령 탐사 착수와 지도제작 완료시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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