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호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46輯
발행연도
2013.7
수록면
83 - 119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쌍영총은 5세기로 편년되는 평양권 벽화고분 가운데 마지막 시기에 자리 매김 될 수 있는 유적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두방무덤이면서도 앞방과 널방 사이에 두 개의 팔각기둥이 세워지고 무덤칸의 벽과 모서리에 목조가옥의 기둥 및 도리 그림이 묘사되는 등 5세기 전반과 후반으로 편년될 수 있는 벽화고분의 특징들을 모두 지니고 있다.
쌍영총 벽화는 제재 구성과 배치, 제재 상호간의 비중 등에서도 5세기 전반 및 후반 고분벽화의 특징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다. 무덤칸의 벽과 천장고임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는데, 후기벽화고분처럼 앞방 동벽과 서벽에 청룡, 백호를 화면에 가득하게 묘사했지만 초기 및 중기 고분벽화의 특징이기도 한 인물행렬을 널방 동벽에, 무덤주인부부 장방생활도를 널방 북벽에 배치하였다. 5세기 중엽 고분벽화에서 자주 확인되는 활짝 핀 연꽃을 무덤칸 천정석에 그려 넣은 것도 주목되는 벽화제재 선택 및 표현방식이다. 이렇듯 5세기에 고구려 사회에서 유행하던 주요한 내세관들과 관련된 제재들을 모두 동원하여 벽화 구성을 시도한 다른 사례를 쌍영총 외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덤 구조, 벽화구성과 내용을 아울러 살펴볼 때 쌍영총은 5세기 말로 편년될 수 있다.
평양 천도와 동아시아 4강시대의 개막을 계기로 고구려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체성의 재확립, 사회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의 정립의 시도했다. 이를 위해 고구려는 대문화권 및 소문화권 단위의 국제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국가 내부 지역문화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쌍영총 벽화에는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고구려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고 평가된다.
쌍영총 벽화에 대한 분석 결과는 5세기 중엽 이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과제를 해결하려던 고구려의 국가적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도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벽화 주제의 혼합 및 혼란, 제재 구성상의 일관성이나 통일성 부족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체계적인 사고나 관념이 뒷받침 되지 않은 쌍영총 벽화의 구성과 내용은 5세기 말에도 고구려에서는 사회·문화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 되고 있었으며 5세기 중엽을 고비로 평양을 중심으로 통합 문화를 출현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이것을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자리 잡게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분 개요
Ⅲ. 고분 구조와 벽화 제재 분석
Ⅳ. 5세기 후반의 고구려 문화와 쌍영총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910-002954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