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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병선 (경향신문)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4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207 - 24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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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본군정기 인도네시아의 자바에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군속의 항일투쟁을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의 흐름에서 살펴본 것이다. 자바의 이방인인 조선인 군속이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비밀결사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한 과정과 말레이 전속명령을 ‘계기’로 항일의 에너지가 무장봉기로 분출한 암바라와 사건을 재구성하고, 일본군정과 자바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했다.
자바의 조선인 군속은 1944년 6월부터 항일 비밀결사를 준비해, 그해 말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고려독립청년당이 창당한 지 7일 만인 1945년 1월 4일 자바 중부 암바라와에서 당원 3인이 무장봉기해 일본군인 등 12명을 살해하는 암바라와 사건이 발발했다. 돌발적인 말레이 전출명령으로 인한 당원 3인의 준비되지 않은 무장행동이었지만, 암바라와 사건은 ‘일본 군국주의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라’는 당의 강령에 따른 ‘고려독립청년당의 항일투쟁’이었다.
암바라와 사건은 견고한 자바의 일본군정 체제를 내파(內破)하고 일본군의 자바 방위전략에 차질을 빚게 했다. 특히 암바라와 사건은 일본군정에 대한 협조주의가 우세했던 자바에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항일운동의 물꼬를 트는 선구적인 것이었다. 비록 조선인 군속이 주도했다고는해도, 일본군정기 자바에서 정치적으로 항일을 표방한 무장투쟁은 암바라와 사건이 처음이었다. 일본군정기 인도네시아인 최초의 항일 무장봉기인 블리따르 사건은 암바라와 사건 40일 뒤의 일이다. 암바라와 사건은 블리따르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선구적 무장투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조선인 포로감시원 군속의 강제동원
3. 항일 비밀결사 ‘고려독립청년당’의 결성
4. 자바 최초 항일투쟁 ‘암바라와 사건’
5. 맺음말-암바라와 사건이 자바에 미친 영향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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