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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형목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나혜석학회 나혜석연구 나혜석연구 제1권 제1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22 - 154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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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극소수 여성에게 허용된 고등교육 수혜와 일본 유학은 자아각성과 아울러 현실인식을 심화시켰다. 이는 ‘파격적인’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원’이자 ‘밑거름’이었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은 시대적인 사조를 인식·체험하는 교육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세이토』에 게재된 여성평등·여성해방 등에 관한 글들은 모순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다양한 사회활동은 선각자적인 여성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었다.
역사학계에서 연구는 민족의식 형성과 민족운동에서 역할에 주목하였다. 3·1만세운동으로 5개월간 옥고를 치룬 후 학생운동과 의열투쟁을 지원했다. 여권 신장을 위한 모순된 현실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여자야학과 미술학사도 운영하는 등 교육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화가로서, 민족운동가, 여성운동가로서 다양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철인’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은 실천적·적극적인 현실인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1927년 6월에서 1928년 3월까지 세계여행은 다양한 사조를 수용하는 에너지원이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순간에 커다란 난간에 봉착하였다. 파리에서 순간적인 생활이 문제였다.
이혼 이후 ‘금기된 인습’과 대결에서 그는 너무나 지치고 외로웠다. 정조유린죄 고소사건은 조선총독부의 ‘최린 구하기’ 일환으로 묵살되고 말았다. 지인은 물론 가족조차도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호사가들 입에 거론되는 ‘화제’의 주인공일 따름이었다.
기독교인 나혜석은 불교에 귀의하는 등 자신의 삶을 추스르는 노력을 기울였다. 수덕사·범어사·해인사 사찰을 순례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원초적인 욕망은 이러한 생활에 안주하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했다. 1948년 추운 겨울날 그는 우리 곁을 말없이 떠났다. 행려병자로서 비극적인 최후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근대교육 수혜에 의한 정체성 정립
3. 근대의식과 민족의식을 심화시킨 동경유학
4. 민족해방운동 참여와 역할
5. 과제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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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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