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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정준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9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125 - 169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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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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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구려가 樂浪·帶方 故地를 지배하는 방식을 검토하여, 이 지역에 대한 지배가 단순히 일부 중국계 망명인이나 토착 유력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 특수한 지배가 아니라, 4~5세기 고구려의 지방지배의 틀 속에서 타 지역과 공유되는 하나의 지배 유형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2郡 지역의 郡縣民 상당수가 漢人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거나 중원 왕조에 대한 귀속 의식이 불분명한 다수의 토착 원주민들로 구성되었던 지역이었다는 점, 고구려가 1세기부터 2郡 지역을 집요하게 공략하여 4세기 전반 이래로 그 전역을 확고하게 장악하여 지배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4세기 초반 고구려가 2郡 故地를 장악해 가는 과정과 고고학적인 양상을 고려할 때, 이 지역의 토착적 기반으로 인해 오랜 기간 일부 중국계 유력자에게 2군 고지의 지배를 상당 부분 위임해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구려는 4세기 전반 2郡 故地 권역을 관할하는 거점성을 두는 가운데 군 지휘관적 성격이 강한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새로 2군 고지에 안치된 중국계 망명인이나 土着 漢人, 혹은 非漢系 토착 유력자로 이루어진 수장층을 통해 예하의 주민들을 관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장층은 고구려로부터 일부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받았으나, 정식으로 중앙에서 관직을 받아 지방관으로 활동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예하 주민집단들처럼 스스로 이끌고 온 세력을 기반으로 존립하였을 것이다.
427년 평양 천도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지배는 4세기 후반 이후 직접 지배 형태로 전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구려가 그 이전까지 2郡 故地 권역에 거의 1세기 가까이 지배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장기간 지속된 하나의 지배 유형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2郡 故地 영역화
Ⅲ. 2郡 故地의 주민집단과 지배 방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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