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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욱 (대구사진문화연구소)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9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281 - 32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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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 예술사진의 태동에는 사진공모전과 최계복이 결정인 동인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전조선사진살롱〉의 개최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하는 최계복은 일본에서 사진으로 유학까지 한 최초의 지역 인물이었다. 그의 사진 작업은 서양 낭만주의 회화에서 출발하는 화면 구도와 함께 1880년대부터 서구 사진계를 지배했던 픽토리얼리즘을 도입한 당대 일본 예술사진에 정통해 있었고, 당대 일본의 사진작가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회화적 미학을 보여주었다. 그의 화려한 공모전 경력은 광복 이후의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지역 사진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광복 이후 계속되는 사진공모전과 지역 사진계의 흐름이 과거를 그대로 모방하는 구습에 얽매여 새로운 작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정체되어있을 때, 구왕삼은 사진과 이론에서 리얼리즘을 주장하였다. 그의 사진은 당대 한국 사진가들에게서 보기 힘든 시대적 감성과 뛰어난 독창성을 가진 것으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조선미朝鮮美’를 사진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그의 사진론과 비평은 한국사진계 전체가 과거의 폐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의 사진계와 벌이는 치열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그의 강력한 이론 전개와 비평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여 강력한 리얼리즘 사진운동을 전개하였던 대구사진계는 이후 해외공모전으로 시선을 돌려 성과를 내기 시작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면 그곳에 눈이 함몰되는 역사의 과정을 반복해 간다. 동시에 대구사진계는 리얼리즘 계열과 살롱사진의 뒤를 잇는 조형주의 계열 상방간의 치열한 비평과 이론적 다툼을 벌이며, 대구 근대사진의 꽃을 피웠다. 당대의 치열한 작업 정신과 상방간의 자극이 주는 긴장감은 지역의 사진 정신을 더욱 갈고 다듬게 하는 자극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공모전에의 몰입과 자극적 대치는 양대 진영간의 시간이 흐르며 감정적 골을 깊게 파고 들어가 1960년대 말에 이르면 대구 근대사진의 종막을 내리게 하였다. 대구의 근대사진은 지방에서 벌어진 단순한 사진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받았던 최계복 이외의 사진가들이 있었고, 광복 이후 한국 사진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모색했던 구왕삼의 사진과 이론들은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장하여 한국의 사진 이론과 비평에 생기를 불어 넣었고, 지역 사진가들의 활발한 해외공모전 참여와 성과는 지역인들의 자부심을 공고하게 하였던 특징을 가진다.

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본문
Ⅲ. 나오는 글
참고문헌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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