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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성환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6호
발행연도
2013.2
수록면
313 - 344 (32page)
DOI
10.15299/jk.2013.02.4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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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의 길목에 자리한 木浦는 섬과 내륙을 연결하는 海港都市로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 ‘藝鄕’이라 불리고 있다. ‘해항도시’와 ‘예술도시’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 본고에서는 ‘海港’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목포가 ‘예향’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과정, 가요 〈목포의 눈물〉의 성공 요인과 문화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분석하였다.
목포의 ‘藝鄕性’은 개항이후 형성된 근대해항도시로서 문화적 특징에 기반 한 것이다. 근대문화 보급의 중심지 역할, 해항도시의 상업성, 섬과 내륙을 연결하는 소통과 교류의 기능 등 목포항이 지닌 독특한 인문환경이 배경이 되었다. 또한 섬에서 이주해 온 예술인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목포항을 주제로 한 대중예술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35년 이난영이 발표한 가요 〈목포의 눈물〉이다. 이난영은 목포 출신으로 항구가 지닌 일제강점기 사회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 그의 노래는 전국 6대도시로 성장한 목포의 문화를 모티브로 창작되고 상품화 된 사례였다.
〈목포의 눈물〉은 지금도 국민적인 인지도가 높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목포시에서는 이난영이 세상을 떠난 196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해 왔다. 이는 ‘목포는 항구’라는 정서와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목포항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가수 개인에 대한 선양보다는 〈목포의 눈물〉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개항이후 형성된 목포의 藝鄕性
3. 항구의 정서를 노래한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4. 문화예술자원으로서 〈목포의 눈물〉 활용사례와 전망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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