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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6호
발행연도
2013.2
수록면
103 - 130 (28page)
DOI
10.15299/jk.2013.02.4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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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서』는 서주~한대에 걸쳐 광범위한 시간 범위속에서 성서되었다. 특히 「왕회해」편은 서주 성왕 시기 서주가 주최한 회합에 예와 맥이 독자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듯이 기재하였다. 고조선의 종족적 실체가 예맥이라는 전제하에서, 서주대의 예족과 맥족을 언급하는 「왕회해」편의 ‘성주지회’ 조문은 오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왕회해」편에 대한 사료 맥락적 분석을 시도한 바, 이는 서주대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국시대 초반의 상황을 서주대로 소급시켜 적용한 결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근거로 성주지회에 참가하는 북방 외족들이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서주대보다 훨씬 후대라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산융ㆍ영지ㆍ고죽ㆍ도하 등은 춘추시대에, 동호는 전국시대 연나라의 동북쪽에 존재했던 외방 세력이었다. 그러므로 성주지회 조문은 서주대의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후대의 윤색된 창작물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동호의 예는 「왕회해」편의 성서 연대가 최소 전국시대 개시 이후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예족은 산동성~하북성~요령성 등, 환발해의 연안에서 존재했던 고대 동방 종족의 한 갈래였다. 그리고 맥족은 섬서성ㆍ산서성의 북쪽 지역과 하북성ㆍ요령성 등에 거주했던 북방 세력에 대한 범칭이었다. 서주 초기 소공 석은 하북성 남부 지역을 연나라로 분봉받는데, 이후 연나라는 동북방 세력인 예족과 맥족이 한후에 의해 통치되던 상황과 맞딱뜨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주 연나라는 동북방 외족으로 예와 맥을 관련된 종족으로 보고, 이러한 과정에서 서주의 동북방 비중원계 외족에 대한 관념이 예맥으로 고정되었을 것이다.
이후 중원 세력이 하북성 지역을 강역화하면서, 동북쪽의 외방인들이었던 예ㆍ맥에 대한 관념 또한 동북쪽으로 더 확대되어 예맥족으로 고정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예맥’의 용례가 전한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요동 지역의 종족에 대응하여 등장하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성주지회 조문에는 서주대에 예인(예족)과 발인(맥족)이 분립되어 나온다. 그리고 예맥 연칭의 관념은 전국시대 후기 연장 진개의 동북방 정벌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주지회 조문의 성서 시점은 대체로 전국시대 초반, 즉 기원전 5~4세기 경으로 한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일주서』 「왕회해」편을 기초로 하여 서주 초기 고조선의 역사성 혹은 고조선의 종족적 실체로 간주되는 예맥족을 논한 기왕의 견해들은 재고의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일주서』의 성서 연대
3. 북방 종족들을 통해 본 ‘성주지회’ 조문의 성서 시기
4. ‘성주지회’ 조문의 穢人·發人과 古朝鮮의 濊貊族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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