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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안식 (전남 문화예술재단)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3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1 - 4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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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秦文獻에 보이는 穢貊은 西周초기부터 戰國時代말기까지 대략1000년 동안 요서지역의 대릉하와 소릉하 유역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예맥은 시베리아를 비롯한 북방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요서지역과 내몽고 동남부 및 하북 북부 일대에서 夏家店하층문화를 영위한 ‘?’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은 예맥의 기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원의 商과 燕및 孤竹과 令支, 북방종족 山戎등이 갈라져 나왔다. 요서 일대에서는 하가점 하층문화가 B.C. 15세기를 전후하여 소멸되면서 發이 등장하였다. 發은 하가점 하층문화를 계승한 채 비파형동검을 특징으로 하는 凌河文化를 영위하였으며 점차 貊과 穢로 분화되었다.
예맥은 山戎?東胡등의 북방종족 및 齊?燕을 비롯한 中原諸國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이들은 B.C. 4세기를 전후하여 중원의 燕이 북상하여 遼西를 비롯한 5郡을 설치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이들 외에 산서 북부와 하북 북부 일대에도 北狄계통의 胡貊(혹은 ?)이 戰國時代초기까지 활약하였다.
예맥은 고조선의 외연에 속한 방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遼河文明의 主幹을 계승한 채 한국상고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그 반면에 요동 방면에서는 고조선이 성장 발전하였는데, 요서 일대의 예맥과는 종족 갈래와 문화 양상이 일부 달랐다. 예맥은 고조선과 燕및 東胡의 각축 속에서 토착기반이 해체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래 중원과는 다른 문화전통을 유지하던 요서와 발해만 일대는 漢化되기에 이르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穢貊의 갈래와 분포지역
Ⅱ. 穢貊의 기원과 문화원형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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