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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인수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1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445 - 47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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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장흥효가 남긴 일기를 통해 17세기 초 안동지역 유학자 가문의 제사 모습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17세기 초는 주자가례에 입각한 제례가 완전히 정착하기 직전 시기이기 때문에 과도기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가 큰 시기이다.
먼저 기제사의 경우 4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장흥효는 고조부모와 증조부모의 기제사를 재종제와 분할하여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고조모와 증조부의 기제사를 거의 전담하였고, 재종제는 고조부와 증조모의 기제사를 거의 전담하였다. 조부모와 부모의 제사는 장흥효가 대부분 전담하고 있는 가운데 윤회봉사의 흔적이 약간 남아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자봉사가 아직까지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았던 과도기의 모습이다. 장흥효는 부계 친족 외에도 외가와 처가의 제사를 주관하여 지내거나 또는 그 제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관심의 크기는 부계 친족에 비교될 정도가 아닐 정도로 약하였다. 부계 중심으로 점차 굳어져가고 있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사시제四時祭는 춘하추동의 중간달인 2?5?8?11월에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사시제의 설행 여부는 주자가례의 정착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하나의 잣대이다. 경당일기에는 사시제를 지낸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년에 네 번 사시제를 지낸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11월에 한차례 지낸 듯하다. 일년에 네 번 사시제를 지낸 것으로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1622년부터였다. 일년에 한번 지내던 사시제를 네 번으로 늘려서 완전하게 지내게 되는 과도기의 모습을 경당일기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명절 제사도 절사節祀 또는 속절례俗節禮라고 표현하면서 당연히 지냈다. 특기할 점은 매번 4대 명절에 즈음하여 조상 묘소를 찾는 성묘를 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명절날 묘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묘제는 우리 민족의 오랜 습속이었다. 장흥효 집안에서도 4대 명절의 성묘를 거의 행하면서 주자가례에 입각한 가묘에서의 제사도 행하는 절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 점에서도 과도기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전기의 분할봉사와 윤회봉사의 관행이 점차 주자가례의 정착에 따라 조선후기의 장자 봉사로 변화해가는 큰 흐름 속에서 볼 때, 장흥효 집안의 제사 방식은 바로 그 과도기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사례인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장흥효와 경당일기
3. 기제사의 관행과 특징
4. 사시제의 봉행
5. 명절제사와 삭망참
6.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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