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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영규 (성균관대)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40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41 - 7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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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命憙(1888~1968)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서는 그동안 상당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강영주 교수의 『벽초 홍명희 연구』와 『벽초 홍명희 평전』을 통해 그에 대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 최근 1920년대의 작품 수편이 새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한문을 제1의 文語로 하며 성장한 벽초가 한시를 남긴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한문글쓰기를 스스로 억제하려 한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실은 여전히 축수시·만시 등 한시의 아비투스를 필요로 하였고, 벽초는 베설·박은식·신규식·여규형 등 사회적 민족적 차원의 기대에 응하여 한시로 만시를 지었다. 또한 정인보·방응모·현상윤 등과 교유하며 한시를 수창하였고, 또 아우 홍성희 등 가족을 그리워하는 정회를 한시에 담아 신문에 발표하였다. 즉 벽초에게 자신의 정회를 표현하는 서정 장르는 곧 한시였다. 해방 이전까지 그는 시조·자유시를 짓지 않은 반면 주로 한시를 지었다. 그런 점에서 벽초의 문필 활동은 漢學의 아비투스 또는 漢文脈의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다.
벽초의 한시 가운데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지은 5언 100구의 「述懷」는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충분한 분석이 시도되지 못했다. 정인보의 면회를 받고 그 회답의 형식으로 지은 이 시에서 그는 식민지지식인이 걸어야 했던 지난한 역정을 돌이켜보고 비록 몸은 갇혀있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는 더 강고해졌음을 표현하였다. 이 시는 긴 편폭에 자신의 생을 성찰하고 속마음을 술회했다는 점에서 벽초의 글 가운데 매우 특별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 벽초는 해방 1주년을 맞이하여 지은 자유시 「8·15 기념」이 주목된다. 이 시는 필자에 의해 발굴된 것으로, 5연 62구의 긴 편폭에 신탁통치 문제 등 혼란한 해방정국을 시로서 성찰하였다. 벽초는 이 시에서 당시의 한반도를 오랜 병마에서 벗어난 환자에 비유하여, 좌우의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 걸어가고 싶지만 현실은 남의 힘에 의존하려는 무기력과 광대들 만이 만연해 있다고 가슴 아파하였다. 신탁통치, 단독정부 수립 등 첨예한 사안으로 여론이 분열되던 1946년 8월의 시점에서, 한반도의 진로에 대해 고심하는 민족적 자아의 숨결이 이 시에 담담하게 토로되었다. 그런데 이 「8·15 기념」은 해방을 맞아 지은 「눈문 섞인 노래」와 마찬가지로 자유시로서의 성취는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對句的표현 등 한시의 전통과 일정하게 맥이 닿아있다. 요컨대 벽초의 한시와 자유시의 저류에는 한학의 아비투스가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벽초는 현실 상황에 따라 한시 양식을 능독적으로 제어하는 면모를 지녔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벽초의 한시창작 성향
3. 옥중시 「述懷」의 서정성
4. 해방후 한시 아비투스의 전변 양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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