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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5권 제2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7 - 34 (28page)
DOI
10.17068/lhc.2012.1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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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세기에 활동한 호남의 학자 황윤석(1729-1791)의 家學을 검토하여 황윤석가의 학맥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18세기 호남 학맥의 一脈을 규명하는데 있다.
황윤석의 집안은 그의 증조부 黃世基가 우암 송시열을 사숙하며 학연을 맺게 되면서 호남 사족의 반열에 들게 된 이후, 松庵 奇挺翼 등 노론 학자와 農巖 金昌協, 渼湖 金元行 등 낙론계 학자와교유하면서 호남 士族으로 기반을 넓혔다. 황세기가 닦아놓은 家學을 밑돌로 황윤석의 숙조부인 黃載重은 기정익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서인 노론의 학맥을 잇게 되었으며 농암 김창협과 적극적으로 교유하며 학문에 힘썼다. 그의 사후에 인근의 유림들이 그를 기리는 향사를 세우는데 적극 동조하여 ‘구암사’가 건립되는 등 ‘鄕賢’으로 이름을 남겼다.
황윤석의 부친 黃?은 숙부 황재중의 가학을 바탕으로 ‘栢溪門人’을 이끌고 있던 柏溪 殷鼎和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寬谷 崔瑞琳으로 이어지는 호남 학맥을 이었다. 아울러 인근 고을에 부임한 관리들과 교유를 넓혀 연줄을 맺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아들 황윤석을 김원행의 문하에 수학하도록 권유하는 등 노론 낙론계와 교유에 힘썼다. 황전이 경기의 낙론계와 적극적으로 교유하고자 했던 것은 영조 31년(1755)에 일어난 ‘을해옥사’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신난’ 이후 최대의 정치적 변란이라고 할 수 있는 ‘乙亥獄事’가 일어나 호남지방을 휩쓸고 있던 무렵, 황전은 노론 낙론계와 학연을 맺고 학문적,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황전은 송시열이 배향된 고암서원의 강회 개설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호남의 陶庵 李縡의 문하와 학문과 교분을 다졌다. 서원의 강학활동을 중시하였던 도암 이재의 뜻을 계승한 楊應秀, 趙晸, 兪拓基 등과 함께 황전은 고암서원 강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호남 낙론계과 학연을 강화하였다.
황윤석 집안은 송암 기정익, 관곡 최서림, 백계 은정화 등 호남의 학자들의 학문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경기의 안동 김문과의 세의를 연줄로 김원행 등 경기 낙론계와 교유하였으며, 고암서원의 강회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도암 이재의 문하를 위시로 호남 낙론 학맥이 형성되는 데 기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황윤석의 家學과 노론 학맥
3. 고암서원 講會와 호남 낙론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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