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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지복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8집
발행연도
2012.10
수록면
8 - 42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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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계 박세당(1629~1703)의 필적으로 현재 보물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서계유묵》을 통해 그의 집안의 서풍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박세당은 서예가로서의 명성은 없지만 서화에 대해 상당한 안목을 갖춘 인물이었다. 서계가문이 서화 방면에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들 박태유·박태보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빼어난 節行과 筆名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서예사적으로는 17세기 후반에 이른바 顔眞卿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서계유묵》은 제자 이정신에게 써준 시문과 간찰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끝부분에 아들 박태보의 간찰이 몇 점 있다. 이 가운데 박세당의 시문은 모두 양주 수락산에 들어가 은거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속세를 벗어난 자연의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있다. 박세당의 글씨는 해서에서는 안진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지만, 행서나 초서에서는 수용의 폭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제한적 경향을 보였다.
17세기 후반의 안진경체 수용 경향과 박태유·박태보의 글씨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즉, ‘충절’과 ‘개혁적 서풍’의 상징성을 띠는 안진경에 대한 역대 문인들의 인식이 17세기 후반에 적극 표출됨으로써, 퇴화의 경향을 보였던 당시의 한호 서풍에 대한 혐오와 이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조성되었고, 이는 결국 안진경체의 적극적 수용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문인들의 이러한 인식의 바탕과 서예의 질적 전환이 요구되던 시기적 경향이 박태유·박태보 형제의 강직한 성품과 충절, 그리고 탁월한 顔風의 구사에 대한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서계유묵》의 구성
Ⅲ. 서계가문의 서풍
Ⅳ. 서계가문 서풍에 대한 평가와 의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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