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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옥란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59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5 - 55 (5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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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은 식민 말기부터 해방 이후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극작가이자 평론가, 잡지 발행인, 영화 제작자, 정당 정치인 등 다양한 정체성의 삶을 살았다. 또한 해방 이전과 이후, 전쟁과 전후, 소 군정하의 북한과 미 군정하의 남한을 모두 경험한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오영진은 해방 직후 평양의 민족지도자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으며 1947년 월남한 이후 1952년 전시 부산에서 월남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단체를 조직하는가 하면 반공서적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1953년 미 국무성의 리더스 그랜트로 미국을 다녀온 이후 1955년 미 공보원과 공동으로 반공영화를 제작하는 등 1950년대 내내 ‘반공 전사’, ‘반공 이데올로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영진은 서북 출신 기독교인이자 민족주의자로 전후 냉전 체제,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 반공 질서에 적극 동의하고 있었다. 오영진은 1960년대의 ‘동원된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과 달리, 분단?월남?전쟁 체험을 통한 ‘자발적 반공주의자’로서 냉전의 세계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한편 오영진의 이러한 ‘자발적 반공주의자’의 면모는 이승만 정권에 전적으로 통합되거나 동원되지 않는 1950년대의 또다른 균열지점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이승만의 우상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전기를 소재로 쓰여진 오영진의 시나리오 〈청년〉과 희곡 〈풍운〉에 주목하게 되었다. 오영진의 시나리오 〈청년〉은, 이승만의 82회 탄신기념일에 맞춰 극단 신협에 의해 연극 〈풍운〉으로 공연되었고,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1959년 신상옥 감독에 의해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으로 영화화되었다. 〈풍운〉은 당시 자유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극단 신협에 의해서 공연되었고,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은 이승만과 경무대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 반공예술인단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반공’(친미와 연동된)과 ‘식민지 기성세대’(친일과 연동된)의 복귀라는 정치적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에 이 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동원’의 과정이 결코 매끄럽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가 오영진과 극단 신협의 이해랑?유치진 등 보수우파 연극인들 그리고 이승만 사이에는 대미의식?대일의식?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균열적인 시선이 포착된다. 1950년대 오영진의 이승만 전기극을 둘러싼 정치적?문화적 풍경들은 우리 사회의 반공 보수주의가 그 기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조형되어가고 있었는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차

국문초록
1. 오영진과 반공ㆍ아시아ㆍ미국
2. 자유 아시아의 냉전 주체와 잡지 『문학예술』과 『전망』
3. 자발적 반공주의자의 내면과 균열점, 〈청년〉ㆍ〈풍운〉과 이승만과의 거리
4. 결론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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