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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대식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2호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25 - 4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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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제국 출현은 새로운 질서로의 전환을 의미했고, 이로 인해 일원적 질서의 주재자인 황제의 정치권위를 뒷받침할 새로운 이념적 근거를 모색해야 했다. 그것은 공적 영역과 권위의 본질과 성격을 제도적 장치로 구체화했는데 바로 회의(會議)의 개최였다. 한 제국 전반에 걸쳐 세 번의 국가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소제 시기 염철 회의, 선제 시기 석거각 회의, 장제 시기 백호관 회의로 진행되었으며, 염철 회의가 국가의 정책방향을 결정하고 회의의 제도화를 보여준 출발점이라면 석거각 회의는 경학의 권위와 정치 권위의 일체화를 가져왔다. 최종적으로 백호관 회의는 정치권위의 제도적 안정성과 우월성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경학 텍스트의 정리에 따른 국가이념의 통일성을 완결했다. 그렇게 보자면 일련의 국가 회의 개최는 여기에 참여한 황제 및 신료와 경학자들에 의해 공(公)의 영역과 경계를 확정지어‘누가 통치할 것인가?’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면 공의 영역과 경계를 확정짓는 일련의 회의가 독점적 지위를 향유한 지배 계층의 사적 통의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사적 동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참여자들로 인해 공의도출이 사에 의해 폐쇄적이고 독점적으로 주도되었다는 태생적 한계성을 반영한다. 결국 제국에 의한 질서조차도 물리적 폭력에 의한 문제해결을 지양하고 토의와 논변을 바탕으로 하는 회의의 제도화를 통해 일원성과 통합성을 추구했을지라도 공적 가치와 공론의 도출과정에서 과거와 동일한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의 공론 형성과 도출 역시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목차

논문요약
Ⅰ. 서론
Ⅱ. 제국질서를 위한 기제모색: 경학(經學)의 탄생
Ⅲ. 회의의 역사성: 염철 회의와 석거각 회의
Ⅳ. 유학(儒學)의 최종승리: 백호관(白虎觀) 회의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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