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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자운 (농촌진흥청) 김은자 (농촌진흥청)
저널정보
비교민속학회 비교민속학 比較民俗學 第48輯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247 - 27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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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및 고령화 등으로 농촌 공동화(空洞化)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을에서 농악을 향유하고 전승할 사람이 부족하게 되었다. 농악의 바람직한 전승을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농악을 전승하고 있지만 마을사람들과 분리되어 전승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고에서는 마을 만들기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을에 소재한 무형문화재 지정 농악보존회 활동에 주목하였다.
먼저, 임실 필봉굿마을에서는 마을 주민 부족으로 대보름굿이나 필봉굿축제 때 마을은 장소대여의 기능, 마을 사람들은 부수적 기능밖에 하지 못했다. 강화 용두레마을의 경우 마을사업을 진행하는 주체들은 보존회를 외면하고 그로 인해 각자의 길을 걷고 있고, 진도 소포검정쌀마을에서는 소포걸군농악 공연 및 체험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제대로 자리잡았으나 정작 마을 현장에서의 농악 전승은 사라진 상태이다. 그런데 원주 회촌마을은 농악이 실제 마을 및 방문객 대상 공연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6?25 전쟁, 마을 주민 감소 및 제초제의 도입 등으로 몇 차례 농악 전승 위기를 맞았으나 마을 대동계 및 강성태 상쇠의 노력으로 그러한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현재 회촌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매지농악보존회는 1990년대 초반부터 매지농악존회원으로 활동한 젊은 세대가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지원 문화사업 유치, 다른 갈래 음악과의 교류 등을 통해 전통적 형태의 매지농악이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10여년이 넘게 마을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감이 있었기에 2000년대 이후 회촌마을 청년회가 재정비되고, 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되면서 두 조직간의 연계를 통해 4차례의 마을축제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 이전 회촌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농악을 향유하였지만 현재의 사람들은 더 이상 농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농악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퇴색된 것은 아니다. 예전과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단오서낭제 때 소지를 올리면서 보존회원들의 소지를 올려주는 것에서 보듯, 마을의 일원으로 간주되는 농악보존회 젊은 세대들이 마을 발전을 위해 마을과 연계하여 마을축제를 개최하면서 의례적 혹은 오락적으로 농악을 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고 멀리했다면 다른 농악보존회와 마을과의 예처럼 벌써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마을 내 대동계 등의 주민조직과 농악보존회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맞추었고,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농악 전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마을은 마을대로, 농악 보존회는 보존회대로 운영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원주 회촌마을 사례를 통해 마을사람들과 농악보존회가 연계하여 의례성과 유희성을 적절히 조합된 마을농악 전승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마을 만들기사업 진행 마을과 무형문화재 지정 농악보존회
Ⅲ. 원주 회촌마을의 마을 만들기사업 현황
Ⅳ. 시대적 흐름에 따른 원주 회촌마을과 매지농악보존회와의 관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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