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鄭成一 (광주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2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501 - 542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동아시아의 銀 유통은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더구나 울릉도-당시 일본에서는 竹島라 불렀음-의 귀속 문제를 놓고 조선과 일본이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발생한 일본의 은화 改鑄는 두 나라의 무역관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었다.

일본의 德川幕府는 1695년에 새로운 銀貨를 발행하였다. 이것은 도쿠가와 막부 출현 이후 약 100년 동안 유통되고 있던 순도 80%의 慶長銀을 대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新銀인 元祿銀의 순도는 64%였다. 이는 은화 1개에 은이 64% 함유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다른 물질이 섞여 있었음을 뜻한다. 일본은 그 뒤로도 은화의 순도를 변화시키는 개주를 되풀이하였다. 그럴 때마다 對馬 藩은 그런 사실을 조선에 알렸다. 대마번이 조선과 무역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조선정부는 일본의 은화 개주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힌 연구는 아직 많지 않다. 이 문제의 해명은 동아시아의 銀 유통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조선은 일본에서 유입한 은화를 중국과 무역을 위한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정부로서도 일본 은화의 순도 문제는 커다란 관심사였다. 요컨대 조선정부가 도쿠가와 막부의 거듭된 은화 개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조선과 일본,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은 유통망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과 일본의 元祿銀 유통 교섭(1697-99)
3. 조선과 일본의 元祿銀 유통 이후 변화(1700-11)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49-003204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