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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아시아여성연구 아시아여성연구 2012년 제51권 1호
발행연도
2012.5
수록면
7 - 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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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성종 8년(1477)에 처음으로 시행된 왕비의 친잠례 논의와 정비과정, 시행절차,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성종은 친잠례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로부터 정권을 移讓받고 親政에 들어간 7년 8월에 친잠례를 거행하기로 하고 親蠶儀制를 조사시키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성종 8년 윤 2월 친잠례는 송나라 제도에 따라 시행하되, 여집사관의 이름은 조선의 관제를 따르게 하였다. 이어 3월 3일부터 창덕궁 후원에 採桑壇을 만들기 시작하여 3월 14일에 역사상 처음으로 친잠례가 행하여졌다. 친잠례의 본격적인 시행은 3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친잠 전날에는 액정서에서 유악을 채상단 밖에 설치하였다. 3월 14일에는 왕비와 내외 명부, 궁녀들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친잠례를 시행하였다. 이날 왕비는 鞠衣를 입고 首飾을 더하여 채상단으로 거둥한 뒤 뽕 5가지를 따고, 내외명부 1품은 각각 7가지를, 내외명부 2,3품은 각각 9가지를 채취하였다. 이날 친잠례에 참석한 사람은 왕비와 내명부 4명, 외명부 10명 이상, 궁녀 10명 등 대략 30명 정도였다. 친잠례 거행 시 왕비는 채상 의식만 거행했으며,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는 의식은 내명부가 거행하였다. 잠실에서의 의식이 끝나면 친잠례는 끝나며, 끝난 뒤에는 왕비가 하사품을 내렸다. 이튿날에도 연회를 베풀었다.
성종 8년에 이루어진 친잠례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조선시대 최초로 시행된 것으로 왕실의 권위 상향과 왕권 강화를 의미하였다. 둘째, 왕비가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는 모범을 보여 그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위민관이 반영되었다. 셋째, 조선 초기 유교적 문물제도가 완성되어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거행의식과 음악, 복식, 의장물 등 당대의 문화적인 유산이 종합된 여성문화행사이다. 넷째,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왕이 아닌 왕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관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성종 8년의 친잠례는 성종의 의도와는 달리 왕비 윤씨의 폐비사건이 발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친잠례는 왕실 여성들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에서 시행되었지만 참석 구성원의 성격상 다른 의례보다 잘 시행되지 못한 한계를 가진다.

목차

논문요약
I. 서론
II. 친잠례 논의와 정비 과정
III. 친잠례의 시행 절차
IV. 친잠례 시행의 의미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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