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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7집
발행연도
2012.4
수록면
204 - 233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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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였으므로, 조선 정부는 오대산사고의 안전한 관리·운영에 만전을 기했다. 강원감사와 강릉부사를 통해 사고의 현황을 상세히 보고받았으며, 건물에 손상이 있는 경우 史官을 파견하여 수보하였다. 또, 사고 인근 주민들의 火田 경작으로 인한 화재 위험에 대비하여 강릉 지역의 절수지 혁파, 화전 적간, 사고 주변의 벌목 실시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정조대에는 효율적인 사고 관리를 위해 사각 건물 외부의 수보는 지방관과 사고 참봉이 담당하도록 했다. 오대산사고를 비롯한 외사고는 산 속에 있는 지형적 이유와 온돌을 설치할 수 없는 구조적 이유 때문에 항상 과다한 습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습기 제거와 적절한 보존 환경 유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사관을 파견하여 曝?를 실시하였다. 외사고 포쇄 주기는 2년 1회가 원칙이었다가 순조대 초반에 3년 1회로 변경되었다. 오대산사고의 일상적인 수직 업무는 사고 참봉과 수직 僧徒, 수호군 등을 차출하여 담당하게 했다. 사고 참봉은 강릉 거주 유생 중에서 2명을 선발하여 교대로 근무하도록 했으며, 차출된 이에게는 신역을 면제해 주었다. 수직 승도는 강릉과 양양의 승려들 중에서 차출되었고 역시 면역의 혜택을 받았다. 수호군은 처음에는 4~6명 정도였다가 18세기에 들어 60명으로 증가하였다. 수호군의 주된 업무는 사고 주변을 순시하며 화재를 예방하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 정부의 오대산사고 운영
Ⅲ. 사고 守直의 규정과 실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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