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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영동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19호
발행연도
2012.2
수록면
163 - 18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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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일명 閨?是議方)의 저자는 오랫동안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安東 張氏; 1598~1680)로만 알려졌다. 조선시대 공식 기록에 여성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안동 장씨 불천위(不遷位) 신주의 후신 함중(後身 陷中)에 있는 기록에서 장계향(張桂香)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주 후신의 함중에는 장례를 치를 때 인물의 신상정보를 기록하는 것이므로, 장계향이라는 이름은 생시의 실명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흔히 품계와 성씨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신주 함중에 실명을 기록한 까닭은, 특정한 조상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후에는 ‘부부무별(夫婦無別)’의 논리에 따라 혼인 전의 실명을 기록하여 여성의 개별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호구단자?족보?행장?비문 등과 같은 공식적?공개적 문건과 달리 비공개적인 신주의 함중에 기록하면 실명 표기의 자율성이 있었기에 여성 조상의 정체를 구체화하기 쉬웠다.
장계향이라는 실명은 신주에 기록된 여성의 실명 가운데서 제법 후대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 조선후기에 유교의 종법(宗法)이 향촌사회에 널리 실행되자 여성차별이 심해지면서 자꾸만 여성의 실명 사용이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계향의 실명이 신주 함중에 기록된 것은 상당 부분 그의 삶이 후대의 귀감이 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장계향의 아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쓴 ?행실기(行實記)?를 보면, 그는 다방면에서 소질과 능력, 덕성을 갖추고 있었다. 장계향에 대한 이러한 가족 내적 인식에 기초하여 신주 함중에 실명이 기록된 측면이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정부인 ‘장계향’의 가계와 생애
3. 정부인 ‘장계향’의 이름 발견과 실명 고증
4. 정부인 ‘장계향’ 실명 기록의 배경과 의의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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