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心山 金昌淑1879-1962)은 평생 유학자로서의 이념과 지조를 지키면서 독립에 매진하였다. 그는 嶺南退溪學派의 마지막 유학자로서 위로 挽宇 郭鍾錫을 통해 퇴계학을 사숙하였다. 젊은 시절 心山은 유학자로서 견결한 자세를 지님과 동시에 나라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실천의 의지를 가졌다. 40대 이후부터는 독립운동에 매진하여 많은 고난을 겪었다. 특히 50대와 60대에는 일제에 의해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심산의 이러한 독립에 대한 강력한 실천은 그가 타고난 기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학통인 퇴계학에서 연유한 지점도 있다. 퇴계학은 주자학을 새롭게 이해하며 그 이해를 학문적, 행동적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성향이 많았다. 이러한 성향은 종종 시대적 임무의 실천과 주자학적 이념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곤 하였다. 심산은 이러한 학통에 바탕을 두었기에 일평생 변치 않은 유학자였으면서도 독립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심산의 학통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실천적 행위가 그들이 견지한 학문적 전통에서 결코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