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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성복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54輯
발행연도
2011.11
수록면
7 - 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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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음력 시월에 산신제를 지내는 동해리는 공주시 유구읍 태화산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마을이다. 동해리 산신제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마을 운영을 위한 동계와는 별도로 19세기 후반 산신제를 매개로 결성된 산향계(山享?)가 조직되어 지금까지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1885년에 중수되는 『동해동산제계좌목』과 1950년대 전후에 기록된 『동해리산향계철』을 집중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아 19세기 후반에서 오늘에 이르는 산신제의 전승양상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포착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동해리 산향계는 19세기 후반 봉건사회 해체기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촌락사회의 실상이 일정하게 반영된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지난날 반촌이었던 동해리에서 산신제를 명분으로 삼아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려는 마을 주도세력의 포석이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동해리 산향계는 산신제를 통해 공동체를 강화하고 통제하며, 구성원들에게 일체감을 공고히 해주는 문화적 장치로써 배태된 산물인 것이다.
산신제의 주관조직으로 출범한 동해리 산향계는 오늘날까지 특유의 끈끈한 결속력을 유지하며 산신제를 주관하는 핵심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것은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황소를 도살하여 희생으로 바치고 전주민이 까다로운 금기를 준수하는 등 19세기 이래의 완고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을의 구성원과 객지로 떠난 주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산향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산향계는 단순히 산신제를 주관하는 조직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를 결집시켜주는 실질적인 구심체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산신제의 역사와 산향계의 성립배경
Ⅲ. 1885년 ‘산제계범례’와 산신제
Ⅳ. 일제강점기 ‘산향계규약’과 산신제의 변화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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