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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한숙 (대구시립국악단)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19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357 - 39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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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민중포교의 목적에서 유래한 원효의 무애무는 고려시대 궁 중에 유입된 이래 격식을 갖춘 정재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정재로서 연행되어 왔지만 근대기에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 공연되었던 것 외에는 연행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후 1980년대 들어서며 국립국악원의 정재재현작업에 의해 무애무는 무대화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무애무는 국립국악원 주최 1981년 5월 18일부터 2003년 9월 26일까지 22년간 27 회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무애무 재현에 영향을 미친 두 인물로는 김천흥과 이흥구를 들 수 있다. 김천흥은 주로 무애무의 무대화 작업에 힘썼고, 이흥구는 무애무의 무보작성과 저서 발간에 주력하였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재현된 무애무는 주로 『계사년홀기』를 근거로 재현되었으며, 의복과 대형 등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다른 정재와 비교하여 큰 차이나 특징은 없다. 그리고 무애무의 재현과 함께 무보 도안과 저서 발간이 병행되었는데, 무애무의 무보를 수록한 두 저서로는 『궁중무용 무보(만수무?무애무)』제11집과 『한국궁중무용총서3:무애무?아박무?무고』가 있다. 이 두 저서에 수록된 무애무의 내용 중에서 특히 호로의 개 수와 반주음악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김천흥과 이흥구가 무애무 재현에 대한 견해를 달리했던 부분이 두 저서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국립국악원 설립 이전 일제기의 무용 전승
3. 김천흥과 이흥구의 무애무 재현
4. 무애무 재현 관련 자료
5. 결론 및 향후과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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