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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경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36집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45 - 7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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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생시에 시인으로 이름났지만, 순국으로 평가가 더 높아졌다. 황현의 전기를 지은 김택영은 황현의 시가 그의 죽음으로 완성되었고, 여러 의인(義人)의 죽음 가운데 황현이 시인이었기에 더욱 이름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시와 절의(節義)가 하나로 완성된 것이다.
황현이 지은 만시(輓詩)는 모두 53수인데, 일반적인 죽음 경우에는 제목에 만(挽)자를 썼다. 특별히 슬퍼한 경우에는 곡(哭)자를 써서 의례적인 슬픔이 아니라 통곡한다는 뜻을 강조하였다. 순국(殉國)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여 시를 지을 때에는 애(哀)자를 썼다.
을사조약이 이뤄지자 여러 의인들이 망국의 부끄러움을 통감해 자결했는데, 그는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팔애시(八哀詩)」를 지었다. 최익현(崔益 鉉)과 이건창(李建昌)은 이때 자결하지 않았지만, 그는 최익현도 머지않아 자결할 것이라 기대해 미리 「팔애시(八哀詩)」에 포함시켰으며, 이건창은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그가 살았으면 지금 자결했으리라 생각해 포함시켰다. 「팔애시(八哀詩)」는 후에 김택영이 산정(刪定)하면서 3수를 삭제, 「오애시(五哀詩)」가 되었다. 아직 자결하지 않은 최익현이나 예전에 죽은 이건창까지 「오애시(五哀詩)」에 포함시킨 것은 문학적인 구도인데, 그도 언젠가는 자결할 결심을 이때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황현이 자결 과정에서 지은 「절명시(絶命詩)」는 『매천야록』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데, 자결 며칠 전부터 그는 『매천야록』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의 제자 고용주(高墉柱)는 “한국이 망하자 진사 황현이 약을 먹고 죽었다”는 기사와 함께 그의 짧은 전기(傳記)를 싣고, 그 뒤에 「절명시(絶命詩)」4수를 기록 하였다. 황현 자신이 의도한 『매천야록』의 결말은 아니었지만, 황현은 자신의 몸을 바쳐 『매천야록』을 마무리한 셈이 되었다.
「절명시(絶命詩)」는 이름 그대로, 적극적으로 목숨을 끊으며 지은 시이기에 ‘죽음의 선언’이다. 『매천야록』이 국민적 필독서가 된 것 또한 황현 죽음의 문학적 성과이다.

목차

1. 죽음으로 시작된 시인의 평가
2. 만(挽)·곡(哭)·애(哀)를 구분해 사용한 황현 만시(挽詩)의 특성
3. 을사조약 때부터 죽음을 생각하다
4. 죽음의 선언 ?절명시(絶命詩)?
5. 자찬 묘지명 성격의 사진(寫眞) 자찬(自贊)
6.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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