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崔德卿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0호
발행연도
2009.7
수록면
363 - 427 (6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미래의 식품으로 불리고 있는 콩은 오랜 기간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으며, 일찍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되어왔다. 이러한 대두의 중요성과는 달리 아직 그 기원과 그 관련 가공식품은 유래조차 밝히지 못한 상태에 있다.
서주시대의 荏菽은 동북지역의 戎菽과 동일 계통이며, 齊桓公이 山戎을 정벌하고 戎菽을 가지고나와 천하에 퍼트렸다는 기록은 華北지역의 대두는 동북지역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해준다. 『齊民要術』 첫머리에 등장하는 고려두의 명칭도 동북지역이 대두의 중심지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漢代 콩의 보급정도는 낙양의 무덤의 발굴을 통해 알 수 있다. 무덤 속에 부장된 토기의 면에 “大豆萬石”, “肉醬”이나 “醬”이란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두 수확에 대한 바람과 대두가 이미 가공식품으로 널리 활용되었음을 말해준다. 실제 『史記』에 의하면 대도시의 고수익 식품으로 초와 간장, 누룩과 메주 등을 들고 있다. 이것은 도시의 일부계층을 중심으로 대두와 간장과 메주와 같은 가공식품의 수요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대두의 수요가 확대된 것은 가공도구가 발달하면서 점차 콩에 대한 용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콩장의 기원은 기원전 3세기 『五十二病方』의 菽醬에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약제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식용화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秦簡』과 『二年律令』에서는 관리나 관청에 소속된 일반민이 출장갈 때 간장을 지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醬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고위 관료에게는 냄새와 맛이 향긋한 콩으로 만든 장을 지급하고, 그 이하 하급 官爵者나 평민에게는 제조가 용이한 麥醬이나 肉醬을 지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대의 평민과 예속민에게는 장과 메주가 널리 보급되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魏晉시대로 접어들면 메주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제민요술』에도 대두를 이용한 메주나 간장 만드는 법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장이 급속도로 민간에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콩의 또 다른 가공식품인 두부가 문헌 속에 등장하는 것은 五代이다. 그런데 최근 河南省 密縣打虎亭 1호 무덤의 畵像石에서 두부 공정인 듯한 그림이 발굴되면서 두부기원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혹자는 이를 지금과 동일한 두부제조공정이라 하여 한대 劉安의 두부 발명설을 지지하는가 하면, 다른 일군에서는 술 제조과정이라고 하여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과연 돌에 새겨진 그림을 베끼는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한대의 두부공정이 지금과 동일했는지 등이 논의의 초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대두의 기원지의 하나인 한반도, 특히 고려와 조선시대의 두부의 형상과 그 제조공정을 살펴본 결과, 16세기 이전 조선의 두부는 오늘날과는 달리 순두부에 가까웠다는 점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화상석 그림에 등장하는 작업도 두부공정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大豆의 기원과 보급
3. 醬과 ? 의 출현과 기원
4. 한대 淸醬과 流通
5. 打虎亭 畵像石과 豆腐의 기원
6.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6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80-001443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