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희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우리文學硏究 제34집
발행연도
2011.10
수록면
39 - 67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선진 이전 고문헌과 고고자료를 통해 볼 때 치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선진 이전 문헌자료에 등장하는 치우는 삼묘와 관련이 있다. 치우가 삼묘의 수장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최소한 삼묘와 같이 창강 이남에 위치하였다. 연구성과에 의하면 삼묘는 창강 중류에서 활동한 고대 민족을 지칭한다. 따라서 치우는 창강 일대의 민족과 관련이 있다.
둘째, 금문 상의 蚩자는 발로 뱀을 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주시기 이후 창강 중류에서는 새의 모습을 한 신인이 뱀을 제어하는 모습의 문양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들 뱀을 제어하는 신인이 바로 치우이다.
셋째, 치우는 조신(鳥神)에 빙의되어 뱀을 제어하는 답사무를 추는 무당이다. 강신한 경우 무당은 곧 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치우는 무당이면서 동시에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대사회에서 무당은 세속적 통치권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치우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통치자이기도 하다.
넷째, 황하 이북의 중원 사람들에게 있어 답사무를 추는 치우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졌고 따라서 이들 남방민족의 지도자가 치우라고 생각하였다.
다섯째, “태양과 뱀의 사투”라는 모티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0년 전에 보이며 중국에서는 춘추시기 이후에 주로 발견된다. 이러한 문화는 이전 중국 사회에 보이지 않던 것으로 중동이나 인도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청동 원료는 대부분 창강 중하류에 매장되어 있다. 이들 청동원료를 얻기 위한 남북방 민족의 대립은 치우와 황제의 싸움이라는 내용으로 문헌상에 기록되었다. 상나라 시기는 청동원료를 얻기 위한 남북방의 대립이 주가 되었다면 주나라 시기에는 남방민족이 청동제련기술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서로 대등하게 대립하는 전쟁의 양상으로 등장한다. 문헌상의 황제와 치우의 싸움은 바로 주나라 시기 남북방민족의 대립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치우는 남방민족의 지도자
Ⅲ. 치우의 기원
Ⅳ. 청동을 쟁취하기 위한 치우족과 황제족의 대립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3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810-000940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