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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3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5 - 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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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 특히 7~10세기에 걸쳐서 驛路라고 하는 계획도로가 일본열도 대부분의 지역에 부설되었다. 이 도로는 폭 9~12m이며 몇 십 ㎞에 걸쳐 직선으로 뻗어있기도 한다. 6400㎞에 이르는 직선적인 도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산허리는 깎고 골짜기는 메웠다. 역로에는 16㎞ 간격으로 驛家가 설치되었고 이곳에서 말을 갈아타고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였다. 역가에는 公使를 위한 숙박시설, 驛丁이 머무는 부속시설, 마구간, 우물 등을 갖추었다. 특히 山陽道의 역가는 벽은 희게, 기둥은 붉은 칠을 하고 지붕에는 기와를 올렸다. 이는 외국 사절에게 일본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역로는 중앙의 명령을 신속하게 지방으로 전달하고 지방의 상황을 중앙으로 보고 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그밖에도 군대를 파견하는 군사적인 목적, 지방에서 바친 세금을 중앙으로 운반하는 행정적인 목적, 외국 사신을 응대하는 외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지방의 국아와 군아 혹은 군아와 군아를 연결하는 傳路라는 도로도 있었는데, 이는 군의 영역까지 왕래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역로와 전로를 이용하여 천황의 명령을 하달하는 문서인 飛驛下式, 지방의 상황을 보고하는 문서인 飛驛上式, 중앙 관사의 명령을 전달하는 符式 등이 역마와 전마를 탄 公使들이 전달하였다.
역로는 거대한 규모를 가진 도성과 더불어 지방에 중앙의 권력을 과시하는 장치였으며, 지방 통제의 이완, 북방 정벌의 중지, 외교 사절의 파견 중지 등을 계기로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역로는 그 이후에도 일본열도 각지에 도로, 토지구획의 기준선 등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목차

국문초록
Ⅰ.머리말
Ⅱ. 계획도로의 출현과 驛路
Ⅲ. 驛路와 驛家
Ⅳ. 驛路와 공문서 전달 시스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s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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