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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화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5號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69 - 98 (30page)
DOI
10.14769/jkaahe.2011.08.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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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화운동은 1980년 5월 광주학살사태 이후 대중적이고 예술적인 반응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많은 미술가들은 미술을 통해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고자 했다. 민중미술은 민중의 사회적 문화적 운동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또한 사회주의 미술의 미학적 원칙에 기본을 두었다. 김정헌, 김경인, 손장섭, 주재환 등과 몇몇의 비평가들은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점인 1979년 12월에 그룹 ‘현실과 발언’을 창립했다. 김봉준은 1982년부터 ‘두렁’ 그룹을 이끌고, 이종구는 뜻을 같이하는 동인들과 함께 1982년에 ‘임술년’을 창립했다. 임옥상, 노원희 등도 1980년에 ‘현실과 발언’에 가입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민중미술’이라 부른다.
민중미술은 사회적 소통과 정치적 참여를 추구하는 리얼리즘에서 출발하였다. 198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대유행 속에 있었던 민중미술가들은 구상화로서 출발하였으며 추상미술을 거부하였다. 민중미술은 한국 전통예술과 모더니즘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민중미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구상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였지만 하이퍼리얼리즘이나 전통적인 구상미술과 같은 것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민중미술은 사회적 현실에 근본을 둔 것이다.
혼란과 격변의 시기인 1980년대 10년 동안, 한국 경제는 다국적 자본주의와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민중미술은 노동자와 농민들로 대변되는 민중들이 정치적 투쟁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였다. 민중미술가들은 정부에 빈부격차를 좁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했지만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를 거부하였다. 민중미술가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외세와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고 순혈주의와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민족생존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민중미술가들은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
민중미술은 막스-레닌주의 관점에 기본을 둔 사회주의 미술이지만 사회현실의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사회를 개혁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미술이라 할 수 있다. 민중미술가들은 노동자와 농민이 지식인계층을 지배하는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조르주 바타이유는 노동은 무엇보다 인간 존재의 근본임을 주장하였다. 바타이유처럼 민중미술가들은 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첫 번째는 노동와 노동자임을 강조한다. 민중미술에 있어 유토피아는 노동자들을 위한 세계이다.
민중미술은 무엇보다 순수미술이다. 1980년대의 사회 시스템과 민중미술과의 관계는 후에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지옥의 도(圖)
Ⅲ. 통일대원의 도(圖)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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