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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주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물사연구회 한국인물사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12호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71 - 10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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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이오의 交遊 관계와 정치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 밝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정이오의 문집인 『郊隱集』을 통해 볼 때, 그가 접촉한 사람은 24인이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정이오가 교유했던 인물들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정이오가 친밀하게 지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은 하륜과 조준이다. 하륜은 정이오와 동갑이었고 어려서부터 진주향교에서 같이 공부하였다. 두 사람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각종 책의 편찬을 같이 하였고, 공ㆍ사석에서 자주 접하였던 것으로 드러난다. 조준은 정이오와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하였고, 태조대 정이오의 후원자였다. 정이오는 조선 태조대와 태종대를 각각 대표하는 실력자였던, 조준과 하륜 모두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또 정이오와 가까웠던 인불들은 柳伯淳’ 柳伯濡와 그들의 父 柳方澤이었다. 이들 瑞山 柳氏家의 일원들은 모두 조선 건국에 대단히 부정적인 성향을 지녔던 인물들이었다. 정이오는 신왕조에 참여를 거부한 인물들과 친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재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던 것도, 그가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점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이오의 관직 생활은 정종 2년(1400)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정이오는 정종이 거느린 甲士를 三軍府로 넘기자는 주장을 하며, 이방원 세력에 합류했다. 정이오가 이방원과 연결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하륜은 당시 관제 개혁과 사병 혁파를 총괄하고 있었다. 하륜 입장에서 정이오는 정종의 군사력 감축같은 은밀한 사안을 같이 추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하륜과 정이 오는 고향, 학교, 나이와 정치적 성향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방원의 집권에 협력하면서, 정이오는 출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이오가 태종에게 도움을 준 것은 사병 혁파만이 아니었다. 태종은 자신의 집권 기간 내에 『태조실록』을 편찬하여, 왕자의 난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집권의 정당성을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제한된 인원만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정이오는 많지 않은 인원을 거느리고, 『태조실록』 편찬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藝文館 大提學이 되었다. 정이오가 대제학이었던 기간은 8개월에 불과하였지만, 정이오는 이후 前大提學으로 불리우며 ‘一世의 名儒’ 혹은 ‘斯文의 宗匠’으로 계속 존경받을 수 있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정이오의 交遊 관계
3. 定宗代 私兵 革罷와 鄭以吾의 역할
4. 太宗代 『太祖實錄』의 편찬과 鄭以吾의 역할
5. 맺음말
〈부표〉 『교은집』 소재 鄭以吾 교유 인물(접촉 시기순)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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