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이 남긴 「鸞郞碑序」는 한국의 신선사상과 최치원 연구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거기서 신라의 화랑과 풍류에 관해 귀중한 정보를 얻고, 또한 최치원의 사상과 학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은 주로 전자에 논의를 집중한다. 즉 현묘지도설이 신라의 ‘풍류[화랑]’에 대한 기술이라는 문맥에서 그 내용을 분석한다. 「난랑비서」에서 분명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신라에 ‘풍류’로 불린 고유한 도가 있었다. 둘째 그 근원이 구비된 仙史가 있었다. 여기서 풍류, 화랑, 그리고 선을 각각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화랑’은 6세기에 성립된 신라 귀족 자제들의 수련 조직[집단] 혹은 제도이고, ‘풍류’는 그들의 활동과 기풍을 일컫는다. ‘선’은 神仙 혹은 仙道일반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고조선부터 전승되었다. “풍류가 삼교를 포함한다”는 최치원의 언명은, 한국 고유의 선도에 충효ㆍ무위ㆍ선행으로 대표되는 유ㆍ불ㆍ도 삼교의 핵심정신이 이미 담겨있었다는 것, 그리고 화랑을 하나의 제도로 설치한 6세기 시점에 풍류가 삼교의 가르침을 두루 수용했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풍류의 ‘포함삼교’는 가장 신라적인 토착문화를 성공적으로 중흥하고 제도화한 자신감과 토대에서, 외래 사상과 제도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여 소화한 결과였다. ‘포함삼교’가 풍류의 내재적 정신과 내용을 말한다면, ‘접화군생’은 그 외적 구현의 원리였다. 군생은 넓은 의미로 ‘뭇 생명’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接’이란 이들과 가까이 만난다는 의미이다. ‘化’는 곧 治化요, 造化요, 敎化이다. 풍류가 서로 다른 이념과 종교를 하나로 녹일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자주성에 있다. 두 번째 비결은 자연종교적 유연성이다. 세 번째로 祭場의 자연성이다. 네 번째로 단군 조선부터 전해진 弘益人間ㆍ在世理化 정신이 풍류의 기풍과 상통한다. 또한 일신이 나뉘어 조화ㆍ교화ㆍ치화의 삼신이 되고, 삼신이 다시 일신이 되는 三一신앙과의 연관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