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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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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任仲爀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중국고중세사학회 중국고중세사연구 中國古中世史硏究 第25輯
발행연도
2011.2
수록면
101 - 151 (5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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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有學者認爲,“自實田”政策的實施,使秦帝國的土地制度演變爲私有制。但《二年律令》授田制材料的出現,使這樣的觀點無法立足。從秦末至漢初,土地制度?未發生根本性變化。蕭何“爲法令約束”,高祖又在五年詔書中闡明“復故爵田宅”,這些措施是西漢土地制度繼承秦制的主要原因。
劉邦入據咸陽之後,蕭何獲得秦丞相府的圖書律令,?據此制定了漢律,故漢初授田制度體現出來的土地國有制度,幾乎完全承秦而來。蕭何制律時間當在高祖二年十一月至六月,其中就包括“戶律”,規定依據爵級來“名田宅”。從這個角度來看,蕭何在秦丞相府收集圖書律令的事件,是決定著漢帝國土地制度發展方向的重要?史性事件。
蕭何制定漢律時間在高祖二年十一月至六月,當時關中地方應當適用漢法,這可由張家山漢簡《奏?書》案例16得到證實。案例顯示,高祖三年楚漢滎陽之戰之際,漢朝一方中有爵位爲11級漢爵?右庶長者。爵位是“名田宅”的依據,這說明當時《戶律》的授田措施已經施行了。惟因如此,高祖五年詔書中才會說“吾數詔吏先與田宅、及所當求於吏者、?與。”
高祖君臣不僅制定了漢律,而且依據漢律實行“名田宅”制度。統一全國後發布的詔書中有“復故爵田宅”措施,要求給戰爭中離開?里的百姓恢復秦代的爵制和財産。如果秦制和漢制?不一致,那?這樣的措施就不會施行。由此可以看出,漢代繼承了秦代的田宅支給制度。
《奏?書》釋放奴婢的資料,有助於理解對楚漢戰爭中有功軍吏卒授田宅的問題。未曾參加楚漢戰爭的普通百姓,無法享受《二年律令ㆍ戶律》規定的田宅支給政策。從陳平和陳勝的事例可以看出,秦末普通百姓不能享受《戶律》規定的情形,也爲漢代所繼承。

목차

Ⅰ. 서론
Ⅱ. 高祖 5년 이전의 爵制와 田宅
Ⅲ. 高祖 五年詔書의 爵制와 田宅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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