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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주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우리文學硏究 제32집
발행연도
2011.2
수록면
333 - 36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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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규가 만주 이주 후 창작한 작품을 살펴보면 이전과는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것을 이중적 시 쓰기의 양상과 의미라는 관점에서 논구하였다. 첫째로 피식민자적 의식과 식민자적 의식이라는 관점을 적용하여 1944년 4월 『조광』에 발표된 「귀족」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 작품이 친일 성향의 작품으로 분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김조규를 친일시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몇 가지 논증을 통해 논의하였다. 논증에는 김창걸의 ?절필사?와 김조규가 편집한 『재만조선시인집』의 서문과 작품을 인용하였다.
다음으로는 미발표와 발표라는 관점에서 작품을 논의하였다. 당시 일제의 지배가 강고했던 조선과 일제의 사주를 받는 만주국에서 심각한 수준의 탄압과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저항적 색채를 드러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따라서 김조규는 저항성을 드러낸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은 발표를 하지 않고 자신의 노트에만 남겨 두었으며 발표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개작하였다.
이와 같은 이중적 전략은 작품을 만주에서 발표할 때와 조선에서 발표할 때에도 적용되었다. ‘오족협화’를 표방했던 만주국에서의 문학활동은 극심한 억압과 착취, 동원이 자행되던 조선에서의 창작과 발표보다는 상대적인 자유가 있었다. 따라서 만주국에서는 만주국의 지도 이념과 상반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에 조선에서의 발표작은 지극히 사적인 서정을 드러내거나 일제의 이념과 전쟁 수행을 옹호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김조규는 만주 이주 후, 신념을 지켜내고 지속적으로 시를 쓰는 방법으로써 이중적 시 쓰기라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언
Ⅱ. 1940년 전후 문단 상황과 김조규
Ⅲ. 발표시와 미발표시
Ⅳ. 만주에서의 발표시와 조선에서의 발표시
Ⅴ. 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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