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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5호
발행연도
2006.11
수록면
285 - 32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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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5월 28일 조선정부는 제2차 修信使 金弘集을 일본으로 파견했고, 수신사 일행이 귀국한 직후부터 조선정부는 서둘러 조미수교와 개화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김흥집이 駐日淸國公使館에서 받아온 『朝鮮策略』(이하 『策略』)이 정부 당국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어 개화정책 추진을 자극했던 것이다. 하지만 『策略』이 그 동안 淸國에서 전해진 정보와 내용상 별로 다르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선정부의 적극적인 개화정책 추진이 과연 『책략』에 큰 감명을 받은 결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본 논문에서는 『책략』 반입과 그 직후 개화정책을 주도했던 개화세력의 의도를 통해 『책략』 전래 이후 나타난 조선정부의 정책전환을 규명하고자 했다.
청국정부는 조선의 안전이 東三省, 나아가 중국 본토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인식 속에서 187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ㆍ러시아의 침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양과 立約通商할 것을 조선에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조선의 수신사 파견을 좋은 기회로 보았던 청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주일청국공사 일행은 수신사 일행에게 문호개방을 적극 권유했고, 마침내 『책략』을 저술하여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을 위해 마련한 方策임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책략』은 궁극적으로 청국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마련한, 청국을 위한 방책이었다. 『책략』 전달을 통해서 청국이 얻고자 한 것은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내고 조선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반면 『책략』을 수용한 고종과 개화세력의 입장에서 『책략』은 防俄策으로서의 의미보다 조미수교와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명분과 논리로서의 의미가 컸다.
斥邪論者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1876년 강화도조약을 '舊好重修'라는 명목으로 체결했기 때문에 이후 4년여가 경과하는 동안 어떠한 개화시책도 펼 수 없었던 조선정부 입장에서는 돌파구 마련이 절실했다. 『책략』 도입으로 정책추진의 명분과 논리를 획득한 조선정부는 유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마침내 무릅쓰고 조미수교와 개화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것이다. 요컨대 『책략』 도입 이후의 조선의 정책 변화는 자국의 안위를 고려한 청국정부와 개화정책을 추진하려 한 조선의 개화세력의 이해관계가 일치되어 나타난 결과였던 셈이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제2차 수신사의 활동
3. 『朝鮮策略』의 도입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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