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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1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01 - 1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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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조선 땅에서 청국인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다. 평안남도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이었다. 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일본 헌병과 청국인 사이에 총격이 발생하였고, 청국인 한 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일본과 청국 간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 사망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청국 측의 조사와 일본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단순한 일본 헌병과 청국인 강도 사이의 총격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진 사건으로 전개되고 흥미로운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먼저 청국측은 관련 중국인들이 결코 도적이나 강도가 아니었으며, 일본 헌병의 조치가 불법의 여지가 있었다고 했다. 헌병들을 처벌하고 적절한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일본측 역시 이 사건에 직접 간접 관련된 현지 조선인을 대상으로 상세한 내막을 조사하고 탐문하여 청국측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청국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유감이지만, 일본 헌병과 조선인 헌병보조원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측이 우세였다. 일본이 조선의 내정과 지방 행정 및 경찰 치안에 이미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을 활용한 것이었다. 일본 헌병과 청국인의 충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911년 역사적 전환기의 조선 향촌 사회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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