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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규철 (경성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7輯
발행연도
2010.7
수록면
155 - 168 (1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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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5경제도를 운영하였는데, 중경이란 상경(북경), 동경, 서경, 남경의 중앙에 위치해서 중경으로 명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발해 5경 중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중심에 있었다는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중경터로 여겨지는 서고성과 그 주변 용두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정효공주묘를 비롯해서 간왕 황비묘의 발굴 등은 중경이 위치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와 전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었음을 의미한다.
발해의 5경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5경의 설치시기에 대한 문제 뿐만 아니라 천도 시기와 천도 순서 등도 아직 의견이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발해 중경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다. 중경은 다른 4경에 비해서 발해의 자주성이 높게 드러났던 곳이었다. 서경이 초기 고구려적 전통이 강한 곳이었다면 고구려말기와 발해초기의 문화적 계승성이 가장 강했던 곳이라고 한다면 중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서고성터의 발굴과 함께 용두산 고분군에서 드러난 간왕의 황비묘 등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경지역은 넓은 평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크고 작은 하천이 많고 기후가 따뜻하여 벼농사에 적합한 곳이며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발해의 특산물로 유명한 顯州의 包, 位城의 鐵, 盧州의 쌀 등이 모두 중경 지역었다는 것도 발해가 중경을 중심 도성으로 삼았던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한다.
최근 발해사학계는 온통 용두산고분군의 간왕 황비묘의 공개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발굴된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공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워낙 기록이 없는 터라 이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은 하루 속히 역사의 진실을 세계에 공개하여야 한다. 몇 년간이나 창고와 일부 인사들만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모를 일이다. 또다른 역사왜곡이 조작되고 있지 않나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관심을 한국 인만의 생각이 아닐 줄로 믿는다. 결코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현장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이기를 믿고 싶다. 정치의 하부구조로서 역사학이 기능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발해 5경의 설치와‘중경’
Ⅲ. 중경지역의 역사적 성격
Ⅳ. 중경지역 발굴성과를 보는 시각과 과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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