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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19號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225 - 25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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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에도 시대(1603 -1867)는 에도(현재의 도쿄)에 막부를 개설한 도쿠가와(德川) 가문과 전국의 2백수십 명의 다이묘(大名)에 의해 통치된 이른바 武家 지배의 시대였다. 이 시대의 문화 정책은 유교, 그것도 현상을 긍정하고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朱子學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따라서 미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옛법(古法)을 준수하는 것이 숭앙되었고 옛그림(古畵)의 粉本에 근거한 가노파(狩野派)가 官學派의 중심이 되어 막부와 모든 지역의 다이묘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전통을 고수하는 가노파의 그림이야말로 바람직한 정통적인 회화인 “본격파 회화(本畵)”로 불리며 민간에서 제작되는 회화와는 엄격하게 구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에도 시대의 중반(18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실증주의적인 기운과, 개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민간에서는 사생화와 문인화가 유행하게 되며 士農工商 각 계층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갔다.
한편,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 활동을 펴고 있던 초닌(町人)들은 경제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풍부한 재력을 배경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당시의 風俗 事象을 직접 소재로 하여 그들 자신의 솔직한 욕망과 감정을 조형화시킨 “우키요에(浮世畵)”라는 민중적인 회회를 육성 해갔다. 권력과 권위의 비호를 즐기며 창의적이며 창조적인 활력을 점차 잃게 된 가노파를 비롯한 관학파는 혁신적인 매력으로 가득 차 있는 민간의 재야 회화에 압도되며 급속히 인기를 잃게 되었다. 과거의 이상을 추구하는 ‘雅’의 회화가 현실에 굳건히 뿌리를 둔 ‘俗’ 의 회회에 패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메이지유신에 의해 일본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봉건 체제 아래에 놓여 있었던 에도 시대에 이미 미술의 보편화, 대중화라고 하는 근대적인 움직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던 상황을 다양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지적하며 검증하였다.

목차

우키요에미인과 가노파의 신선
가노파와 우키요에
사생화와 문인화의 경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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