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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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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29輯
발행연도
2009.6
수록면
53 - 9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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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堂은 발원자가 願堂主를 위해 寺院에 공간을 마련하고 독점적인 發願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당은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자유로운 신앙의 한 형태로 광범위한 계층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시대에는 거의 王室로 제한되었다.
조선왕조의 佛敎가 崇儒抑佛의 지배 이념 아래서도 유지되고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원당을 설립한 결과라 할 수 있다. 朝鮮後期는 性理學的 지배질서가 정착되면서 불교에 대한 억압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억불정책과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조선후기 불교가 보존될 수 있는 여러 조건도 있다. 먼저 兩亂을 통해서 불교계가 보여준 忠君愛國的 활약은 지배층의 억불정책에 다소나마 변화를 초래하였다. 국가적 위기에서 義僧軍이 보여준 살신의 희생은 사회적 안정과 더불어 僧役化되어 국가 재정은 물론 지방 재정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물질적 기여와 더불어 신앙적 대안으로서 기능하기도 하였다. 즉 인간 삶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生老病死에 대한 祈福과 追福에 대한 욕구를 유교가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실원당에 봉안된 원당주 당대의 왕을 기준으로 위로는 先王先后와 王 자신 및 妃嬪, 그리고 자신의 자식인 王子와 王女, 그리고 형제 자매 등과 같은 王室의 至親이다. 조선후기 원당이 설립되면서 가장 많이 봉안된 사람은 선왕선후이다. 선왕선후가 봉안된 원당이 많다는 것은 유교적인 孝行이 불교를 통해서 충실히 실천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원당이 설립되는 과정에는 왕실에서 사사로이 內需司를 통해서 설립하는 私的인 경우와 예조의 관문을 통해서 설립하는 公的인 경우가 있다. 두 경우 모두 봉안할 대상과 원당이 설립될 사원이 결정되면 왕의 敎旨나 해당 관아의 關文이 내려지고, 해당 군현에서 完文이나 節目을 내림으로서 절차는 끝이 난다. 원당의 내부 구조는 독립된 殿閣이 있는 경우와 불전에 竝設된 경우가 있다. 전각의 내부는 佛像, 佛畵, 佛具, 祭器 등과 원당주의 位牌, 御眞, 御筆 등을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불전에 모셔진 主佛은 阿彌陀如來佛로 觀音菩薩과 大勢至菩薩 및 地藏菩薩을 협시로 하고 있다.

목차

논문 개요
Ⅰ. 머리말
Ⅱ. 願堂의 奉安 對象
Ⅲ. 願堂의 設立 節次
Ⅳ. 願堂의 構造
Ⅴ.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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