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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3輯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69 - 9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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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高句麗의 對隋關係에 대해서는 양국간 전쟁에 초점을 맞추어 그 배경에 대한 검토가 깊이 있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고구려의 입장에서 대외정책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거나 고구려 내정을 통해 양국관계를 살펴보려는 노력은 부족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점을 인식하고 隋文帝및 煬帝의 집권 시기 및 정책적 중점을 고려하여 ?陽王代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고구려의 대수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三國遺事』紀異편에 소재한 金庾信의 출생설화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 설화를 590년대 전반 고구려 국정, 특히 대수정책을 둘러싼 이견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양왕 전기 고구려의 대수정책은 강경노선으로 기울었다. 이러한 대수강경론이 등장한 이면에는 東突厥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정세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판단과 고구려적 질서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양왕은 내부반발을 잠재우고 遼海諸國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遼西攻略을 단행함으로써 수의 고구려원정을 유발하였다. 결과적으로 영양왕은 1차 高ㆍ隋戰爭을 통해 확고한 입지를 다졌으며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영양왕 후기 정국과 대수전쟁에 대해 검토하였다. 598년 제1차 高ㆍ隋戰爭이후에도 고구려의 對隋政策은 강경노선을 견지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영양왕이 있었다. 이러한 정국흐름 속에서 대수정책은 1차 전쟁을 통해 드러난 여러 변수를 고려하며 전방위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고구려의 對南方政策은 한수 유역과 가야를 둘러싼 百濟ㆍ新羅양국의 적대관계를 이용하여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라를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백제 및 倭와 通好하였다. 고구려는 북방에 위치한 돌궐에도 사신을 파견하는 등 수에 대한 대비책에 만전을 기하였다.
수 양제는 체제정비를 바탕으로 수중심의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외팽창정책을 취하며 세 차례에 걸쳐 고구려원정을 단행하였다. 고구려는 수의 공세를 잘 막아내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었으며 경제기반마저 무너져 내렸다. 이제 영양왕에게 주어진 과제는 안으로 경제기반을 복구하여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대수관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는 영양왕에 대한 또 다른 시험대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陽王前期의 對隋關係
Ⅲ. ?陽王後期의 對隋關係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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