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2輯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63 - 94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외연적 형태와 구조, 그리고 지방통치의 전개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작성되었다. 이제까지의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중국측 사서 중심의 누층적 성 편제라는 결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세부적인 문제, 가령 지방행정단위의 문제, 지방관의 형태문제, 지방의 구분 문제 등에 대해서 학계의 합일된 견해가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가급적『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여타 기록들과 중국측 사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지방통치의 실체 파악을 중점적으로 시도해 보았다.
먼저 사료상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部名에 대한 검토를 해보았다. 이들 部名은 주로 五部나 방위명 부, 방향명 부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실체를 밝히는 것이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외연을 밝히는데 가장 선결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部名들에 대한 검토 결과 고구려 후기의 五部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우선 전국적 구분으로서 五部의 실재 여부에 대해서 검토한 결과, 지방 五部는 그 명칭을 알 수없지만 실재하였고, 여기에는 外評五部褥薩이 파견되어 통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방위명 부는 초기 이래로 왕기의 구분 명칭이었음과 이러한 전통이 고구려 후기까지 이어서 왕기의 지역구분으로 있었고, 여기에도 또한 지방 五部와 마찬가지로 內評五部褥薩이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통치하였다고 보았다. 한편 전후상하중의 방향명 부는 왕도의 구분이었다고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지방관의 존재형태에 대해서 검토해 보았다. 『한원』「고려기」에 나와있는 서술내용과 어의에 의한 검토 이외에 사료의 문장구조 분석을 토대로 지방관의 실재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지방인 왕기와 전국 五部는 각각 諸大城-諸城-諸小城의 누층적인 성의 등급별로 편제되었으며, 諸大城에는 중국의 도독에 비정되는 褥薩이, 諸城에는 중국의 주 자사에 비정되는 處閭近支(道使)가, 諸小城에는 중국의 현령에 비정되는 婁肖가 임명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성-내지 諸大城과 諸城급 이상에만- 에는 중국의 長史에 비정되는 可邏達이 있어서 지방관의 속료로서 업무를 분장하여 담당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이들 지방관이 파견된 지방행정단위는 각급 성을 기준으로 일정한 제도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의 검토를 위해『삼국사기』지리지에 등장하는 각종 고구려 후기의 지방제도와 관련된 내용들을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중국의 도독부에 비정되는 諸大城은 部로, 중국의 주(또는 군)에 비정되는 諸城은 군으로, 그리고 중국의 현에 비정되는 諸小城은 현으로 파악되어, 결국 고구려 후기의 지방제도는 部-郡-縣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들 部-郡-縣의 명칭은 주로 치소성의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각 사료상에는 城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으로 보았다.
고구려 후기 지방제도는 고구려 중기 지방통치에서 계기적으로 발전한 형태였는데, 중기의 城(谷)의 宰-군급 성의 太守-國郡과 같은 광역의 守事들이 각각 후기의 褥薩-處閭近支(道使)-婁肖로 전환된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이러한 고구려 후기의 지방통치는 중기의 발달된 지방통치의 전개에 따라『周書』, 『隋書』의 조세 수취 기록이나, 광개토왕비, 평양성각 자성석의 기록들로 보아 원활한 역역동원체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말기 오골성 욕살의 예에서 보듯이 이미 지방관의 능력은 말기로 갈수록 퇴보되어 궁극적으로 왕권을 대행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후기 들어 발생한 권력 분쟁과 지속적인 대외 전쟁에 따른 국정의 피로, 그에 수반한 국정 운영 시스템의 노쇠 현상이 맞물려 벌어진 상황이었다.
지방통치의 전개는 국가권력 중심의 이동이라는 의미를 같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 보았다. 즉 고구려 초기 나부세력이 왕과 함께 국가권력에 참여하여 국가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시기에는 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이 중앙정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차 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은 줄어들고, 왕기지역의 방위명부를 관칭하는 세력들이 증가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시기가 대체로 고구려 초기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중기이래로 율령의 반포, 대외 정복전쟁, 평양 천도 등 일련의 국가체제정비를 계기로 하여 이제는 왕도 출신 인물들이 국정을 장악했다고 보인다. 「중원고구려비」에 등장하는 전부, 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또한 같은 비문에 나오는 환노(환나)나 평양성 각자성석에 나오는 괘루 등 과거 나부세력이라고 믿어지는 지역이 지방의 격하된 현상을 보여주는 것도 일례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 안원왕대 국가권력의 분열을 시작으로 점차 권력의 중심이 원심화되는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삼국사기』연개소문전에 보이듯이 연개소문과 같은 왕기지역의 권력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五部의 실체
Ⅲ. 지방관과 지방행정단위
Ⅳ.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