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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25호
발행연도
2006.9
수록면
5 - 3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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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중ㆍ남부 지역 기독교 역사에 대한 재구성 작업은 북부 지역의 그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전체 한국기독교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라도 이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기독교 수용 메커니즘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 지역의 향촌사회 내부에 기독교의 수용을 주도하는 인사들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과 다시 그들은 출신 성분과 행동양식, 경제적인 역량에 있어서 상당히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10년 이전에 설립된 100여 개의 교회 설립 사례 가운데 수용주도층이 드러난 경우는 대략 60여 개에 이른다. 그 중 2/3에 해당하는 40여 개는 향반출신들이고, 나머지 20여 개는 부민과 중인층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의 학문적ㆍ사회적 실천은 상층 양반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들의 실력은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던 소농민들에게는 값진 것이었지만, 특별한 사승관계나 두드러진 학문적 성취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구체제에 대해서는 별 미련이 없으면서, 문명개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하여 기독교와 서구의 문물제도에 친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중간층의 사회적 성격 가운데 하나는 바로 농민들과의 친밀한 인간관계에 있다. 그들은 향촌민들에게 교회 가입을 권유하여 어떤 개종의 분위기를 주도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교회와 아울러 학교의 설립을 병행하고 있다. 아울러 기독교수용주도층의 사회적 신망과 경제적 능력은 소농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19세기 중간층의 중요한 특성인 경제적 자신감은 기독교수용주도층에서도 동시에 발견된다. 그들의 다수가 예배당 건축을 주도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물질적 기여는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기독교수용주도층은 초기 한국교회의 중요한 예배인도자들이었다. 교회 안에서 그들을 능가하는 지식인은 없었다. 소농민들은 수용주도층이 이해한 복음의 내용을 다시 전달받았다. 한국교회 초기의 신앙의 깊이와 넓이는 수용주도층의 지성적 수준과 언어의 세계를 능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해한 복음의 내용을 분석하는 일은 한국교회의 과거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중ㆍ남부 지역 기독교수용주도층의 존재
3. 중ㆍ남부 지역 기독교수용주도층의 성격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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