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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문화학회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東北亞細亞文化學會 第8回 國際學術大會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48 - 55 (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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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은 에도시대초기의 유학자로 막부의 유학관료 린게(林家)의 조상이기도 하다. 교토의 로닌(浪人)의 자손이며 어릴 때 고잔(五山)의 하나인 겐닌지(建仁寺)에 들어갔으나 주자학 연구에 뜻을 두고 사찰을 나와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의 문인이 되었다. 22세 때 세이카(惺窩)에게 당당하게 논문을 보내어 세이카가 주자학을 신봉하면서 陸象山ㆍ王陽明의 학문을 믿고 있음을 비난 하고 불교도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즉 세이카가 陸象山ㆍ王陽明의 학풍에 대해서 포용적인 것에 반해 주자학자로서의 초기의 라잔은 육상산 왕양명의 학풍을 배격하며 주자학 만을 신봉하였다. 라잔은 주자학 一尊主義를 주장한 사람이지만 폭이 좁은 주자학자가 아니고 『大學抄』ㆍ『大學解』ㆍ『論語解』 등 다수의 漢書籍의 訓点, 出版, ?書講述 등 큰 발자취를 남긴 학자였다. 또 주자학의 견지에서 일본고유의 신기(神祇)신앙과 주자학설과의 조화를 도모하고 쥬카신도(儒家神道)24)를 만들어 『神道?授』ㆍ『本朝神社考』 등을 저술하였다.
라잔의 이러한 폭넓은 분야의 활동이 일본의 유학ㆍ역사학ㆍ문학ㆍ神道學ㆍ本草學 등 각 분야에 걸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박학다식한 라잔이 세이카의 제자로서 세이카에게 주자학을 배웠다는 일반론에 대해 아베 요시오(阿部吉雄)씨는 라잔이 세이카의 문인이 되기전에 이미 조선 전래의 서적을 많이 읽은 것에 의해 사상적 입장이 결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아베씨는 라잔만큼 많은 조선본을 읽은 사람은 드물 것이며 이것은 임진왜란(文祿ㆍ慶長의 役)에 의해 새롭게 전래된 많은 서적을 라잔이 재빨리 독파한 것에 의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 때 일본에 강제적으로 반입된 「淸州本」 『명심보감』(1454년 당시 조선의 淸州, 현재의 충청남도 청주시에서 간행된 판본이다.) 이른바 조선판 『명심보감』도 라잔이 접했다. 이것은 본 논문에서 증명함과 같이 라잔의 저작인 『도모쇼(童蒙抄)』(다른 이름 『쿤모요겐로쿠(訓蒙要言錄)』)가 청주본 『명심보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확실하다. 羅山의 思想形成에 임진왜란때 도래한 『명심보감』과 朝鮮通信使와의 交流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심보감』이 근세 초기의 巨儒인 라잔에게 읽혀진 것은 당시의 『명심보감』수용 및 라잔의 권선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이와 같이 주자학자로서의 라잔이 勸善書를 그 사상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상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라잔의 勸善書가 『명심보감』을 수용하였다는 것에 관해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이점을 사상사적 관점에서 깊이 고찰한 논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라잔의 『童蒙抄』를 들어 『명심보감』의 인용 실태 및 그 사상적 특징을 명확히 하여 라잔의 『명심보감』 인용사상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목차

1, はじめに
2, 壬辰倭?(文?ㆍ慶長の役)と林羅山
3, 朝鮮通信使と林羅山
4, 羅山の『童蒙抄』と『明心?鑑』
5, おわり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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