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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56號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183 - 20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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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畵學硏究會는 전통회화의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북경에 세워진 中國畵교육기관이었다. 金城(1877-1926)과 陳師曾(1876-1923), 陳漢第(18714-1949 )등, 신공화국의 관료화가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친일 성향이 농후하였던 봉천파 군벌 徐世昌(1857-1936) 총통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친군벌적이고 친일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4회에 걸쳐 행해진 中日繪畵聯合展이었다. 1919년 5ㆍ4운동 이후 증폭된 반일감정가운데서도 川合玉堂(1873-1957), 竹內栖鳳(1864-1942), 山元春擧(1871-1933) 등의 작품이 중국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일본(동경, 오사카)과 중국(북경, 상해)에서 전시되었다. 당시 북경에는 서양화의 사실정신을 받아들여 중국화를 개량하고자하는 中國畵改良論이 팽배하였다. 이들은 전통 中國畵가 畵院畵家들의 사실적 묘사 능력을 폄하하고 四王의 정통주의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古畵의 臨摹만을 중시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 實景을 묘사할 것, 畵院畵風을 본받을 것, 揚州八怪와 石濤, 八大山人등 개성주의 화가의 창작성을 본받을 것 등을 제시하였다.
김성의 「北樓論畵」와 「畵學講義」, 진사증의 「文人畵의 가치」와 「中國畵는 진보적이다」 등을 살펴보면 이들이 중국화개량론자의 요구를 많은 부분 수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상해박물관 소장 石濤의 〈山水淸陰圖〉를 정확히 임모한 김성의 1911년 작〈倣石濤山水圖〉와, 金農의 화풍을 방작한 김성의 〈倣金農鐘?圖〉는 개성주의 화풍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실경을 묘사한 진사증의 1915년 작〈泰山圖〉와 원근법과 음영법을 참조한 〈臨淵閣圖〉는 서양화법을 참조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1924년 작 김성의〈野溪放艇圖〉는 張路와 李唐 등 北宗 화풍의 면모를 보여주며, 김성의 1924년 작〈孔雀圖〉는 渡邊晨畝가 중일회화연합전에 출품한 〈孔雀圖〉와 매우 유사하여 일본화풍을 적극 참조하였음을 보여준다.
중국화학연구회가 1926년 김성의 사후 해체되자, 그의 제자들이 湖社를 조직하여 1937년까지 운영하였다. 반일감정이 팽배하였던 당시 일본화풍을 참조하였고, 엄격한 시승관계 속에서 고화임모를 지나치게 주장함으로써 후학들의 창조성을 제한한 점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급속히 확산되어가던 서양화의 위력 속에서 전통 중국화가들을 결집시켰고, 湖社月刊을출간하여 전통 회화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점은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목차

Ⅰ. 序言
Ⅱ. 20세기 初의 北京畵壇과 中國畵論爭
Ⅲ. 中國畵學硏究會와 湖社의 성립
Ⅳ. 中國畵學硏究會와 湖社이 회화이론과 화풍
Ⅴ. 結論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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