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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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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1號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417 - 439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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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金仁問은 7세기 중엽에 빈발한 전쟁과 반란을 지켜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나이 23세 때 견당사의 임무를 띠고 入唐함으로써 역사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그 후 김인문은 총 일곱 차례에 걸쳐 당에 들어가 7세기 중엽 신라의 대당외교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국내 체류기간 동안에는 총관 혹은 장군으로서 삼국 통일전쟁에 참여하여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김인문을 신라 삼국통일의 元勳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화려하고 성공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의 한반도 분할정책에 동조함으로써 생전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김인문의 유해는 왕경의 서쪽 벌판에 묻혔는데, 그것이 현재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金仁問墓이다. 김인문은 비록 생애 대부분을 당에서 보냈고 문무왕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였으나, 국내의 후손들은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였다. 그들의 정치활동은 하대 진골 연합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유형, 반란을 일으켜 왕권에 도전한 유형, 지방으로 내려가 호족으로 성장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유형은 일찍이 김인문이 품었던 꿈과 좌절을 되풀이한 듯하여 흥미롭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출생과 성장
Ⅲ. 국내의 활동
Ⅳ. 정치노선
Ⅴ. 죽음 그 후
Ⅵ.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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