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34집 제3호
발행연도
2000.12
수록면
61 - 81 (2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여운형, 김구, 조봉암 세 사람이 지향한 노선을 살펴 볼 때, 우리는 그 유사성에 크게 놀라게 된다. 이들은 모두 당면해 있는 새 국가 건설과 통일이라는 양대 과제가 상호 밀접히 결합되어 동시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았고, 자주의 원칙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새 국가 건설에 있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제3의 독자적 발전의 길을 추구하였다. 이들이 이러한 제3의 독자적 국가건설의 길을 추구한 것은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또 다른 과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들은 모두 평화통일론을 주창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여운형은 분단이 가시화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좌우합작과 미ㆍ소 협조를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는데, 그를 위해서는 국가 건설의 길 역시 좌ㆍ우 그리고 미ㆍ소 어느 한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독자적 발전노선에 입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김구의 경우 통일정부 수립은 남북한 모두 외세에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적 민족역량이 단결될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김구에게 있어서 분단상태는 남북경제의 분업고리가 끊어진 파행적 경제상태로서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따라서 외세에의 경제적 종속이 불가피한 상태를 의미했다. 조봉암의 경우 통일은 오직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대안이며,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수탈이 해소되어 민주역량이 강화된 이후 해결될 과제였다. 민족통일은 남한의 민주역량 강화와 북한의 일정한 체제수정을 통한 남북간 체제 수렴의 기초 위에 외세와의 자주적 협상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세 사람은 같이 활동하던 시기에 상호 협력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지지자들은 이들 사후(死後) 서로 협력하여 자주적 노선을 이어갔다.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기에 각기 자주적 발전과 통일의 길을 고수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역사의 중심무대에 서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물리적으로 말살 당하였다. 이들의 상호 반목과 암살ㆍ사형이라는 비극적 최후의 배경에 외세의존적 기득권세력이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여운형, 김구, 조봉암의 국가건설 노선
Ⅲ. 민족통일과 제3의 길: 3자의 비교
Ⅳ. 여운형, 김구, 조봉암의 반대세력
Ⅴ. 맺는 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340-017363304